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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35 ::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발트해를 건너 코펜하겐으로 간다. (로스토크 - 코펜하겐) 본문

여행

타박타박 세계일주 35 ::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발트해를 건너 코펜하겐으로 간다. (로스토크 - 코펜하겐)

한성은 2017. 1. 14. 17:09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이야
늦잠을 자고 뒹굴거리기 좋은 아침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거라는 순진한 발상으로
알람도 없이 애인의 모닝콜도 없이 서른 살으로
인생의 햇살이 정수리에서 내리쬐는 순간
좋아 속도 없이 웃을 있는 내가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이야
늦잠을 자고 뒹굴거리기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슬슬 일어나볼까
점심을 먹자 이런 날엔 뭐든 좋아

- 가을방학,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노랫말 중에서

< 부릉부릉 캠핑카 여행 루트 2 >

< 독일 로스토크 항에서 덴마크 게드세르 항으로 가는 대형 페리 >


어제저녁 해가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해가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올랐다. 지금까지 12747번을 경험했던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세상이 점점 밝아져 가는 것에서 설렘을 느낄 있을까? 지난날들을 생각해보면 아침 해를 기다리는 날보다 제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든 날들이 많았다.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다가오는 월요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했다.

오늘도 역시 정확하게 동쪽에서 해가 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을 바라보며 설렜다. 베를린에서 로스토크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는 날이 인생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번도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낯선 공간이 나에게 설렘을 선물하고 있다.

여행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는 숭고한 사건이 적어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같다. 다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짧은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여러 나누어도 되는 일을 굳이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면서까지 떠나야 했을까.

단지 외국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과 낯선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동시에 충족하고 싶었다. 사실 그냥 크게 설레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설렘이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같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종류의 사랑 중에서 굳이 '첫사랑' 쉬이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다. 가장 크게 설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이 바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설렘이 행복한 삶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여행도 끝이 텐데, 여행이 끝난다고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의 설렘 덕분에 나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여행을 계속하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외부 자극들을 수용하면서 사고가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비싼 애플워치를 사고 손목에 차던 피부로 전해지던 금속의 차가움이 주던 설렘보다 여행의 설렘이 나에게 훨씬 값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젯밤에도 나는 기대하며 잠들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침의 공기를 가득 마실 있어서 행복했다

부릉부릉. 독일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슈퍼마켓을 가야 했다. 마침 로스토크(Rostock) 외곽에 대형 할인점 '리들(Lidl)'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장도 봐야 하고, 페리에 캠핑카를 싣고 덴마크로 가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오늘 목적지인 코펜하겐 근처의 캠핑장까지 운전해야 해서 마음이 바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예상시간보다 넉넉하게 잡고 일정을 추진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덴마크부터 북유럽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말은 덴마크부터 물가가 무지막지하게 비싸진다는 말이다. 국경 마을이라 있는 리들에서 대형 쇼핑카트 가득히 식료품을 담았다. 담을 없을 만큼 많이 담았는데, 50유로가 되지 않았다. 슈퍼마켓에 있으니 독일을 떠나기가 싫었다. 하지만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마지막 채비를 마치고 로스토크 항으로 차를 몰았다.

캠핑카를 선적하는 비용은 125유로였다. 비싸긴 하지만, 육로로 돌아갈 드는 시간과 유류비를 생각하면 이편이 낫겠다 싶었다. 승선 대기 줄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캠핑카들이 있었다. 거의 절반은 캠핑카였다. 남들도 가는 길이니 틀린 선택은 아니구나 싶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느라 배가 고팠다. 기다리는 동안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하던 참에 승선하라는 신호가 들어왔다. 차를 몰고 배에 타는 것은 한국에서도 없는 일이라 살짝 긴장됐다. 승무원의 수신호에 맞춰서 앞차와 거의 닿을 듯이 주차를 했다.

< 독일의 슈퍼마켓 물가는  저렴하다. >

< 로스토크 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차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캠핑카였다. >

< 로스토크 - 게드세르를 운항하는 Kronprins Frederik


로스토크 항구에서 덴마크 게드세르(Gedser) 항구까지는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국가 페리 이동은 처음이라 설렜다. 일단 구경을 하고 차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지갑만 챙겨서 객실로 올라갔다. 국경을 넘어가는 페리였기 때문에 안에는 면세점도 있었다. 면세점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물건들이 독일 현지보다 훨씬 비쌌다. 물론 덴마크보다는 저렴했다. 그런데 면세점에서 콜라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콜라는 독일보다 싸길래 24 박스를 하나 샀다. 차에 가지고 가서 마실 생각이었다

계산을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려는데 주차장이 잠겨 있다. 출항 이후에는 주차장으로 내려갈 없게 되어 있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같이 흉흉한 시기에 어쩌면 당연한 조치이겠으나, 이동하는 안에서 점심을 해결하겠다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콜라 박스를 들고 안을 구경하기도 번거로워서 다시 면세점으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나중에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된단다.

세수도 얼굴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콜라 박스를 안고 창가에 앉았다. 뱃속에서는 천둥이 치는데 먹을 거라곤 콜라밖에 없었다. 안에는 간단한 스낵코너도 있고, 훌륭한 뷔페도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없었다. 메뉴판에 쓰여 있는 덴마크 크로네(DKK) 한화로 환산하면 도저히 먹을 없는 가격이었다. 정말로 북유럽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했다.

겨우 시간이었지만, 아침부터 굶은 데다가 감자튀김 냄새가 객실에 퍼지니 그야말로 고통스러웠다. 느린 걸음으로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그나마도 지쳐서 TV 앞에 앉았다. 마침 브라질 올림픽 기간이라 TV마다 올림픽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경기가 다름 아닌 태권도 경기였다. 멋진 발차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짧은 탄성을 뱉으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태권도가 정말로 세계적인 스포츠가 됐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소리로 내가 바로 태권도 종주국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태권도를 한다. 발차기라도 해보라고 한다면 참으로 난감할 테니 그냥 조용히 있었다.

< 이게 뭐라고애증의 콜라 박스 >

< 짧은 구간을 운항하는 페리지만 국제선답게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

< 리우 올림픽 태권도 중계 방송에 빠진 사람들 >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니 내릴 준비를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참으로 반가운 안내 방송이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뒤로 있는 다른 차들이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서둘러서 캠핑카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페리에서 내리니 빨간 덴마크 국기가 나를 반겨 주었다.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덴마크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유명한 낙농업 강국이다. 이름답게 게드세르 항구를 벗어나자 국도변으로 황금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목적지는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캠핑장 Tangloppen Camping이었다. 유럽의 대도시는 도로가 좁고 복잡한 데다가 캠핑카는 차체가 커서 주차장 이용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도시를 때는 근처 캠핑장에 캠핑카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 구경을 다녔다. 캠핑장의 위치는 이미 5개월 전에 확인을 해뒀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여행 계획에 맞춰서 다른 캠핑장들의 위치도 모두 체크를 상태였다. 캠핑카 여행을 마친 지금은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처음 캠핑카 여행을 준비할 때에는 관련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정을 아주 세밀하게 세웠었다. 물론 그대로 지켜진 것은 거의 없었다.

< 펄럭이는 덴마크 국기를 보니 드디어 북유럽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

< 푸른 하늘 아래에 끝없이 펼쳐진 황금들판이 나를 반겨 주었다. >

< Tangloppen Camping 캠핑장의 이모저모 >


북유럽은 캠핑 문화가 아주 발달해 있다. 특히 고위도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호텔은 없어도 캠핑장은 있었다. 근처 캠핑장을 찾고 싶으면 구글 지도에 그냥 'camping'이라고 검색하면 된다. 내가 참고했던 나라별 캠핑장 안내 사이트는 덴마크(www.dk-camp.dk), 스웨덴(www.camping.se), 핀란드(www.camping.fi), 노르웨이(www.camping.no) 정도였다. 물론 외에도 수많은 캠핑 안내 사이트들이 있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시간 정도를 달려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 이용요금은 차량 종류와 인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하루에 250크로네(1크로네=170) 정도였다. 잔디밭에 차를 세우고 캠핑장 구경에 나섰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Tangloppen Camping 정말 예뻤다. 이후로도 많은 캠핑장에 들렀지만, 이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중의 하나였다. 특히 바닷가에 줄지어 있는 붉은 오두막과 하얀 요트들은 푸른 하늘 아래에서 폭의 그림처럼 있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도 캠핑을 좋아하셔서 전국에 있는 캠핑장을 많이 다녔지만, 정도로 예쁜 곳은 없었다.

캠핑장에 있는 많은 캠핑카와 텐트들 중에는 누가 봐도 장기 캠핑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은퇴 후에 캠핑장에서 지내며 여행하듯 노년을 보내는 것이 덴마크의 요즘 추세라고 했다. 정말 멋진 생각 같았다. 기본적인 편의시설은 캠핑장에 갖춰져 있었다. 거기에 캠핑카 또한 지내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시설이 잘되어 있으니 북유럽 물가를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있는 것이었다. 코펜하겐까지는 자동차로 20분이면 충분했다.

캠핑장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만도 시간이 걸렸다. 먹고 다니려고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는데, 의도치 않게 시작부터 온종일 아무것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은 캠핑의 돼지고기 바비큐를 했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것저것 자꾸 만들어 먹다 보니 이제 쌈장이나 파무침 정도는 감고도 척척 만들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상추 쌈까지 챙겨서 가득 차려놓고 덴마크행 페리에서 샀던 애증의 콜라를 보탰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온종일 일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었는데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해가 지면 쏟아지는 별을 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북유럽의 여름밤은 더디 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별이 쏟아졌는지 엎어졌는지도 모르고 잤다.

< 대도시 근교의 캠핑장에서 지내며 노후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 호수같은 바다를 안고 있는 Tangloppen Camp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