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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51 :: 뉴욕현대미술관에 왔는데 여유가 1시간 밖에 없다면?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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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51 :: 뉴욕현대미술관에 왔는데 여유가 1시간 밖에 없다면? (2)

한성은 2018. 7. 27. 00:52

뭐가 의미 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축 쳐진 내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 옥상달빛, '하드코어 인생아' 노랫말 중에서


그림 같은 걸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도대체 뭘 그려 놓았는지도 모르는 추상 미술을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으면 뭔가 심오한 깨달음이 생기기라도 하는 걸까?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림을 본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왜 그림을 보러 다니는 걸까? 이런 질문을 진짜로 받는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나는 그림 대신 시가 등장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었다. 


"선생님, 시를 대체 왜 배우는 거에요?"

"시인은 시를 대체 왜 쓰는 걸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시를 썼을 거에요. 그 이야기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시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었을 거에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옥상달빛의 노랫말처럼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다고 생각했던 인생이 반짝이는 저 별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그림 앞에 서서 계속 버둥거렸다. 지난 글에 이어 뉴욕현대미술관 가이드에서 '시간이 1시간 밖에 없을 경우'라는 항목에 소개된, MoMA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작품만 모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크 로스코가 리스트에서 빠져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오브제(털 위의 점심식사)> 메레 오펜하임 1936

찻잔에서 털이 잔뜩 자라나 있다. '대체 이게 뭐야?'싶은 작품의 주인공은 메레 오펜하임이다. 그리고 오펜하임이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 작품에 '털 위의 점심식사'라는 제목을 붙인 사람은 초현실주의의 교황인 앙드레 브르통이다. 도저히 현실에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사물이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찻잔과 숫가락에 털이라는 흔하디 흔한 대상을 붙였을 뿐인데 왜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걸까?

그녀는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 적은 없다. 그저 파리의 카페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털로 장식된 그녀의 필찌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개념이란 항상 형태와 함께 탄생한다. 나는 머릿속에 어떤 생각(개념)이 떠오르면 그 생각들을 현실(형태)로 만들어버린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을 두고 파리 예술계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를 드러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에로티시즘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제니 홀저는 이 작품을 두고 "삶이란 보기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앞에 둔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불편한 감정'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저 찻잔에 녹차를 우려서 마신다고 생각하니 입 안에 털이 가득해지는 것 같았다.


<No.31> 잭슨 폴록 1950

관객도 열광하고 비평가도 열광하고 콜렉터도 열광하는 잭슨 폴록은 미술사와 관련한 '모든' 책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잭슨 폴록의 짧았던 전성기는 벌써 70년이나 흘렀는데도 그는 여전히 붓을 손에 든 검투사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서 있다. 잭슨 폴록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만약 그의 거대한 작품을 직접 마주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참 궁금했었다. 그의 작품 가격(2015년 거래액 약 2,240억 원)을 생각하면 당연히 캔버스를 달구는 뜨거운 열정과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화산처럼 터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는 마음 속으로 내뱉은 '아!'하는 감탄 외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뭔가를 생각하기에는 관람객이 너무 많았다. 작품에서 후광이 번쩍이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림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사람에 밀려서 옆으로 떠내려가는 것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장면이었다.

잭슨 폴록은 대표적인 '저런 거는 나도 하겠다!'류의 화가다. 그의 기법을 두고 비평가들은 작품에서 전후좌우의 대립이 사라진 '전면화(all over)'라든가 수직의 공간이었던 캔버스를 수평의 공간으로 바꿔 놓으면서 처음으로 작품 속에 중력을 끌어들였다는 등의 이유로 극찬을 한다. 하지만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없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했던 물감놀이와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도 그 둘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비평가들도 각자의 이유로 잭슨 폴록을 극찬했는데 그 이유도 참 제각각이다. 모더니즘 미술 비평의 수장이자 <아방가르드와 키치>를 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그의 작품이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넘어 진정으로 평면적인 순수한 회화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극찬했다. 그에 반해 잭슨 폴록에게 '액션 페인팅'이란 용어를 선사한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는 잭슨 폴록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창작 과정을 보고 저것이야 말로 '미국 회화의 본질'이라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훌륭한 비평가들도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말만 하니까 우리도 마음껏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즐기면 된다.

잭슨 폴록의 작품이 갖는 내재적인 의미는 모르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 위를 돌아다니며 공업용 페인트를 뿌리는 그 순간, 파리가 공식적으로 현대 미술의 변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잭슨 폴록으로 인해서 미국은 드디어 정치, 경제, 군사 뿐만 아니라 예술마저도 유럽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잭슨 폴록은 참 대단하다. 아니, 미국은 참 대단하다.


<영적인 숭고함에 대하여> 바넷 뉴먼 1950-1951

유럽의 추상화를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적 추상이라 한다면 미국의 추상화는 잭슨 폴록이나 바넷 뉴먼을 중심으로 하는 비기하학적 추상이다. 비기하학적 추상을 다시 둘로 나누면 잭슨 폴록의 표현적 추상과 바넷 뉴먼의 색면 추상으로 나눌 수 있다. 추상 회화는 이론적인 부분과 뗄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단어를 썼지만, 쉽게 말하면 바넷 뉴먼은 캔버스를 색으로 가득 채웠다는 말이다. 거기에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zip(수직으로 가로지른 선)을 넣었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과 똑같은 작품이 나올까봐 걱정을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그렇듯이 처음 뉴먼의 작품을 본 그의 동료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 작품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작품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뉴먼의 작품이 시멘트 벽에 붉은 페인트를 바른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하지만 뉴먼은 그의 작품을 위해 수 개월 동안 신중하게 색을 고르고 수많은 물감층을 쌓아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이를 통해 '영적인 숭고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미술이 '형태'가 드러내는 아름다움이었다면 자신은 색면을 통해 아름다움이 아닌 '숭고함'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도 했다. 가로 5.4미터 세로 2.4미터의 거대한 캔버스를 마주한 관객들에게 반드시 1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라고 했다.

큐레이터 앤 템킨은 이 그림의 원제 '비르 에로이쿠스 수블리미스'가 영웅적인 숭고한 남성을 의미한다며, 2차 세계대전 후 드디어 미국 예술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게된 것에 대해 긍지감이 넘쳐있던 순간의 미국 예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뉴먼이 말한 숭고함과 큐레이터가 말하는 숭고함은 그 차이가 참 먼 것 같은데, 작가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비평가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의 붉은 색은 정말 붉어서 잊히기 힘든 붉은 색이었다. 


<깃발> 재스퍼 존스 1954-1955

미술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앤디 워홀의 이름이나 팝-아트 같은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재스퍼 존스는 2011년 오바마 정부로부터 '대통령 자유의 메달'도 받은 팝-아트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팝-아트의 시작은 영국 예술가 집단인 인디펜던트 그룹이 했지만 미국의 팝-아트가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미국에는 재스퍼 존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미국 팝-아트의 할아버지 정도 되는데 전통적인 유화 방식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프로토-팝아트'라고도 한다.

모더니즘 예술이 추상표현주의까지 나아가면서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린 대상이 있는데 바로 '일상'이다. 그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도 예술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뭔가 거청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을 추상표현주의라고 한다면 팝-아트는 손바닥을 펼쳐 땅을 향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할만큼 서로 다른 세상을 지향했다.

재스퍼 존스는 자신의 작품을 향한 비평가들의 찬사와 조롱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림이 세상에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른다. 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화가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릴 따름이다."

그는 언제나 평범하고 우리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물체들을 그렸다. 그는 이것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불렀다. 그 대상에는 지도, 숫자, 알파벳 문자, 표적 등이 포함되었으며, 이 작품에서는 그 대상으로 깃발이 선택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 이 작품이 발표된 때는 한국전쟁의 휴전과 함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의 모든 신문은 온통 반공운동으로 가득 채워졌었다. <깃발>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작품이 아니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당시의 신문들이 깃발 아래에 콜라주되어 있다. 당시의 기사와 날짜도 읽을 수 있다. 표면에 물감을 두껍게 칠했지만 밀랍과 물감을 섞었기 때문에 두껍고 견고하면서도 그 아래 신문이 깃발 위로 올라온다. 재스퍼 존스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지만 <깃발>을 마주한 당시 비평가들과 대중들은 각별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읽었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정전으로 세계는 냉전을 맞았고 새로운 예술이 탄생했다. 이제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전쟁의 종전을 이끌어 내려고 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과 함께 세계가 평화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또 이를 알리는 새로운 예술이 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