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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 교토 버스 2 :: 친절은 구조에서 온다

한성은 2016. 3. 24. 20:08
<일본 교토 시내버스 1 :: 비합리적이지만 효율적인 질서>에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기본 정보

일본의 버스는 뒷문으로 승차하고 앞문으로 하차를 합니다. 그리고 버스 요금은 하차할 때 냅니다. 교토의 버스 요금은 240엔입니다. 하루 동안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 패스는 500엔입니다. 버스 환승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교통비가 우리나라보다 비쌉니다. 교토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버스를 어떻게 탈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버스 패스는 인포메이션에서 구매할 수도 있고, 버스 패스 자판기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교토역에서 도착해서 버스를 타기 전에 미리 일정을 고려하여 몇 장 구매를 해 두었습니다. 여행 중에 보니 패스를 모든 정거장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패스를 구매하면 첫 번째 버스를 타기 전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입해 둘 수 있습니다. 첫 개통시에는 버스를 내릴 때 카드기에 넣어서 날짜를 인쇄하면 되고, 이후로는 카드기에 넣고 하차를 하거나 그냥 버스 기사님에게 보여주기만 해도 됩니다. 대부분 그냥 보여주고 내리던데 저는 굳이 기계에 계속 넣고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마지막 날 알았습니다.


우선 대상자

우리나라 버스를 생각해 봅시다. 앞문으로 승차하고 뒷문으로 내립니다. 그리고 버스에 탈 때 요금을 지불합니다. 버스 카드를 찍고, 현금을 넣고, 동전을 거슬러 받으며 버스에 승차하는 동안 열려 있는 뒷문으로 승객들이 하차를 합니다. 내리는 승객들이 있으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지 않고 ‘삐~’ 센서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승객 하차가 끝나면 문을 닫고 버스가 출발합니다.

버스 기사님 위치가 버스의 앞쪽에 있으니 당연히 승차하는 상황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하차 상황은 룸미러를 통해서 파악을 해야 합니다. 하차를 하려고 하는데 벨을 눌러도 기사님이 깜빡 잊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라든지, 가방을 메고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사이에 문이 닫혀서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하고 이야기를 해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기사님이 하차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버스는 뒷문으로 탑니다. 요금도 우리와 반대로 내릴 때 냅니다. 그래서 하차하는 앞문에서 버스 패스도 찍거나 보여주고 동전을 교환하기도 하고 동전을 바닥에 흘려서 주섬주섬 줍기도 하고 버스 패스 어디다 뒀는지 몰라서 민망하게 서 있기도 합니다. 그 모든 상황이 버스 기사님 바로 옆에서 벌어집니다. 승객들의 하차 상황 파악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버스에도 승객이 타고 내리는데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센서가 있겠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내내 ‘삐~’ 소리를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소리가 안나는 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승차하는 승객들을 향해 ‘삐~’ 소리를 내며 문을 조금이라도 빨리 닫으려 할 리는 없겠지요. 버스 승객이 곧 돈이니 ‘이미 잡힌 물고기’를 대하는 것과 ‘아직 안 잡힌 물고기’를 대하는 자세는 다를테니까요. 그래서 하차 과정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정적입니다. 물론 하차와 관련한 소요 시간이 길기도 합니다. 일본 여행을 하기 전에 ‘일본 버스는 우리나라보다 느리다.’는 글을 몇 번 봤는데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승하차 승객이 모두 안전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승객이 다 타지 않았는데 출발하는 것과 승객이 다 내리지 않았는데 출발하는 것 중에 굳이 고르자면 후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데 버스 승하차 구조 상 일본은 전자의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높은 반면 우리나라는 후자의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높습니다. 우선 대상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버스에서 내릴 때 미리 하차 벨을 누르고 뒷문에 서서 준비를 해야합니다. 버스가 정차하고 난 후에 일어나서 뒷문으로 걸어가면 뭔가 눈치가 보입니다. 빨리빨리 움직여서 얼른 내려드려야 버스 기사님은 물론이고 다른 승객들도 좋아합니다. 일본에서는 대체로(겨우 사흘 버스를 타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요.) 버스가 완전히 정차를 하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갑니다. 버스가 운행 중인데 짐을 챙기고 미리 일어나서 버스 앞으로 걸어가는 제가 오히려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 느긋하게 움직입니다. 승하차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버스가 정차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린다.’ 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상식을 자기 가치로 내면화 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버스는 선불제인데 일본 버스는 후불제입니다. ‘일본 버스 1’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것도 신뢰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버스 승하차 구조가 무임승차 고객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겁니다. 그러면 너무 슬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승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버스 승객은 ‘잡힌 물고기’인 반면에 일본 버스 승객은 버스에 타긴 했지만 아직 서비스 요금은 지불하지 않은 입장입니다. 후자가 승객을 더욱 배려하는 요금 지불 방식입니다.

마인드 보다 시스템

일본 버스를 타면서 안정적이고 쾌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쾌적하다는 것은 단순히 승객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버스 승객의 입장에서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버스 안의 전광판에 앞으로 정차 예정인 정거장 명을 서너개 더 노출하여 주고, 승하차 시에 버스가 인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등등이 또한 서툰 여행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하는데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 치부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거기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 문제를 개개인의 마음, 가치관, 성격, 의지 등으로 분석하고 또 같은 방식으로 풀어 나가려고 합니다. 청년 실업문제를 보아도 개인들의 ‘노오력’을 강조합니다. 실업, 양극화, 입시 등의 사회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조선놈들은 안돼’ 따위로 접근을 한다면 서로를 향한 힐난만 존재할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버스를 앞으로 내릴 것인가, 뒤로 내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실체도 없는 민족성 드립을 치는 것 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는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