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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신은 인간에게 ‘합리주의’라는 저주를 주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으므로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또 합리적인 사고를 합니다. 죽음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내일을 한 달을 일 년을 십 년을 삼십 년을 준비합니다. 저 집단이 우리 집단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상대를 미리 제거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전쟁을 일으키고 학살합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배움의 기쁨보다는 경쟁과 서열화의 고통 속에서 불안해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참고 열심히 ..
개봉한 날부터 망설였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지만, 객석의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할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보기를 계속 미뤘습니다. 사실 안 보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 고민하는 것만으로 도덕적 의무감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섭고 두려울 테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보며 그들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슬픔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내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 잡아야 하고, 경직된 상태로 런닝타임 내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안 보고 싶다’하는 것은 내가 나를 아끼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였습니다.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저는 그냥 아이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수도권 지역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
1993년에 개봉한 페퍽트 월드를 오랜만에 다시 본다. 케빈 코스트너의 한 쪽 눈썹만 찡긋 올리는 표정이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거울 보고 연습도 참 많이 했는데 잘 안된다. 츤데레 헤인즈(케빈 코스트너)의 묘한 따뜻함이 십년 만에 다시 보는 동안에도 내내 커다란 모니터를 에워 쌌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은 영웅들의 대서사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한 세상, 혹은 올바른 세상으로 이끌어 주고자 하는 욕망은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부모는 자식이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고, 교사는 학생들이 모두 착한 우등생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남자는 여자가 더 젊고 예쁘기를 바라고, 여자는 남자가 더 강하고 부유하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곳이기를 바라고, 나의 부모님은 내가 장가가기를..
음악 들으면서 술 마시고 싶다.누구나 음악을 좋아한다. 특별히 음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구나 음악을 좋아한다. 세티 프로젝트(외계지적생명탐사)에서도 음악은 중요한 언어이다. 아마 외계인들도 음악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보다. 동물들에게도 음악을 들려주고 (코끼리가 바흐를 들으면 좋아한다는 걸 모 티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식물들에게도 음악을 들려준다. 무기물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보면 뭐 물도 음악을 좋아하긴 하나보더라.외국 사람 이름을 혹은 사람 이름 전체를 잘 못외운다. 아니 그냥 머리가 나쁘다. 남자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어제 본 영화인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쓰려는 내용..
원래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고민을 떨치고 속세를 벗어나려는 시도일 수 있지만, 나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컨텐츠이니만큼 머리든 가슴이든 인상적인 무엇인가가 남길 바라는 지적 허영이 있다. 그래서 흔히 액션물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게 본 히어로물은 베트맨 시리즈 중 다크나이트다. 선과 악에 대해서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주는 서사가 참 좋았다.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실존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꺼내들면 참 좋은 영화다. 그랬기 때문에 마블 시리즈 같은 심지어 천박한 히어로물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보고 (내가 처음 본 마블 히어로 영화다) 반했다. 말 그대로 반했다. 화려한 영상이야 그들의 무기겠지만 역시나..
세상에나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가. 손예진의 어눌한 연기와 김남길의 터지지 않는 액션과 감초여야하는 조연들의 섞이지 않는 억지 웃음들이 버물어진 졸작. 이야기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지만, 네가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마 라고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걱정 1. 손익 분기점이 500만이라던데… 걱정 2. 씨네21에서 최근 사극 세 편 중에서 최고라고 했는데 정기구독 첫 주에… 걱정 3. 손예진 예전부터 액션하고 싶다고 그렇게 목말라했는데… 씨네21 기자가 진심으로 올 해 세 편 중 최고라고 하던데, 그렇게 살아도 될까.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낫다고 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해명하기 위해 지면을 할애하던데 친구인가? TistoryM에서 작성됨
멋진 영화 리뷰란 모름지기 비유를 하는거다. 전주에 갔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전주 비빔밥을 소재로 사용하여, 얼마나 많은 전주 비빔밥 전문점이 있으며, 비빔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과 시간과 노동이 얼마나 많으며.... 그렇게 먹은 전주 비빔밥이 얼마나 형편 없는가에 대한 경험을 나열한 후 군도 이야기를 꺼내는거다. 그래도 나는 계란 후라이를 진짜 좋아한다. 아침에 밥 대신 계란 후라이를 세 개씩 먹고 출근한다. 그래도 또 먹을 수 있다. 계란 후라이가 전주 비빔밥 위에 얹어진다면 난 얼마든지 행복해 하면서 전주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 그게 전주 비빔밥이 아니어도, 김이 폴폴 나는 계란 후라이가, 게다가 반숙으로 얹어진다면, 그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라고 외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도시. 죽음이 있는 터 위에 삶이 이어지고 다시 죽음을 두텁게 하는 삶. 우리는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고 사는 것 같지만, 늘 과거에 묶여서 산다. 과거가 굴절시킨 미래를 보고, 과거의 개연성 위에 미래를 설계한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의 연장선이며, 결정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순간은 퇴적된 과거의 어느 장면이다. 그러나 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들이 만들어간다.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인천에 와서 텅빈 친구의 방에 우두커니 앉아 영화 경주를 보고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배시시 웃는다.
엣지오브투모로우 오랜만에 시원하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뻔한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서사장치 하나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게 필요한 것 같다.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서사. 내 삶에도 그런 서사 장치 하나가 필요하다. 결과물을 바라는게 아니라 mac os 의 option 키와 같이 work flow에서 흐름을 바꿔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게는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을 쓰며 내 하루의 옵션을 선택하고 내일을 바꾸고 더 다양한 하루하루가 되면 일상의 무의미함을 유의미함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반드시 의미로워야하나. 그것 또한 집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지만, 내가 바라는 의미로움이란 결과적 의미로움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