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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퇴근하고 혼자 찾아간 양꼬치 가게. 나의 방문이 직원들의 퇴근을 붙잡는다. 정밀아의 노랫말처럼 어른이 되려면 소설 몇 편 쯤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자정 무렵 아무도 없는 가게에 혼자 앉아 양꼬치 2인분과 소주 1병을 30분만에 말끔히 해치우고, 낯이 익은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그들의 퇴근을 허락하자,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직원들은 아직 퇴근을 못 한다. 영업시간은 새벽 1시까지니까.
"공부하는 시간 많이 빼앗기지 않나요?" "저 지금 공부하는 중이에요." 우문현답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고, 소위 특목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던진 질문이었다. 조현경(부산국제외고 2학년) 학생은 봉사활동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 '화난다' 라고 답했다. "어른들은 공부라고 하면 학교 공부만 생각해요. 학교 안에서 배우는 것이 있고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이 있어요. 저는 지금 공부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이런 봉사활동을 하면 대학 가는 데 유리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화가 나요." 먼저 밝히자면, 필자는 이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공부하던 교사였다. 현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직한 상태이며, 이런저런 핑계로 그동안 한 번도 함께..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왜 배우는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학습은 노동이 된다. 학습의 결과가 배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가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그것이 물질적 풍요를 보장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학습이 배움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다면 학습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될 것이다. 노동과 놀이에 관한 고찰은 많은 학자들이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했다. 노동이 곧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곧 노동이 된다면 우리 삶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해야 한다. 노동을 할 것인가. 놀이를 할 것인가. 행위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왜?'에 대한 대답이 없다면 공부하는 것이 싫을 테고 그러..
산동네에 줄지어선 아이들이 트로트 부른 이유 ▲ 사랑의 연탄 나눔 유난히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맞닿은 낮은 지붕 아래로 따뜻한 마음들이 한 장 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 한성은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아침. 지난주 내내 기말고사를 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을 부산국제외고 1학년 학생들이 부산광역시 부암1동 주민센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텐데... 이른 아침 일어나서 약속 장소에 모두 모인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우와! 저 연탄 처음 봐요~." "근데 연탄이 이렇게 무거운 거였어?" 주민센터 마당 한 편에 차곡차곡 쌓인 연탄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외친다. 난방을 위한 연탄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많다. 연탄 배달을 TV로만 보..
처음으로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학교에 있으면서 담임으로서 가장 큰 불만이었던 것은 하나가 아이들과 오직 교실에서만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논다는 것이 최고경영자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소심한 나는 책상 아래에 숨어서 욕만 했습니다. 안들리게. 학교 안의 공기와 학교 밖의 공기는 다릅니다. 다른 공기를 마시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이 아니고, 나 또한 교육방송 영상이 아닌데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학교와 교실을, 교사와 학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의 의미는 상대적입니다. 교실 밖을 알아야 교실 안에 대한 의미 부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