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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산동네에 줄지어 선 아이들이 트로트를 부른 이유

한성은 2016. 2. 19. 03:26


산동네에 줄지어선 아이들이 트로트 부른 이유

▲ 사랑의 연탄 나눔 유난히 파란 하늘과 그 하늘에 맞닿은 낮은 지붕 아래로 따뜻한 마음들이 한 장 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 한성은



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아침. 지난주 내내 기말고사를 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을 부산국제외고 1학년 학생들이 부산광역시 부암1동 주민센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텐데... 이른 아침 일어나서 약속 장소에 모두 모인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우와! 저 연탄 처음 봐요~."
"근데 연탄이 이렇게 무거운 거였어?"

주민센터 마당 한 편에 차곡차곡 쌓인 연탄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외친다. 난방을 위한 연탄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많다. 연탄 배달을 TV로만 보던 아이들이니 연탄 나눔 자원 봉사를 위해 모인 아침이 마치 소풍을 떠나는 날처럼 설레나 보다.

"출발합니다!"

소형 트럭에 연탄을 싣고, 함께 가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작은 승합차에 나눠 타고 오르막을 오른다.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 연탄 차가 부릉부릉 /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굳이 안도현 시인의 시를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 활동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더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또 오르고 올라서 도착한 부암동 동평로 131번길의 마지막 지점. 하늘과 그대로 맞닿아 부산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이 이날 연탄 나눔 봉사 활동을 하는 마을이다.

"여기 창고에 250장 넣어주세요!"

창고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 간에 간격을 맞추고 안정된 자세를 잡는다. 장갑과 조끼를 단단히 여미고 까만 연탄을 한 장씩 조심 조심 전달한다. 한 장씩 전달하다 보면 금방 허리가 아프고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이거 봉사자가 없으면 어떻게 배달해요?"

아이들이 궁금해한다. 사람의 손이 얼마나 절실한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원 봉사 활동이란 나눔이라기 보다는 배움의 활동에 가깝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스스로 질문하고 깨달아 가는 것이다.

▲ 사랑의 연탄 나눔 연탄 지게 조차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길도 아이들의 손과 손이 닿으면 넓어 진다.
ⓒ 한성은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다음 집은 좁은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간격을 맞추고 자리를 잡으니 겨우 연탄을 실은 트럭에서 창고까지 연결이 되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말 그대로 '손길'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연탄을 수백 장씩 전달하니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기도 조금씩 사라지고 허기가 진다. 그리고 누군가 또 외친다.

"야! 우리 왜 이렇게 조용하노? 힘드나?"
"이럴 때 노동요 부르는 거라더라. 노래 불러라!"

여고생들의 입에서 갑자기 구성진 트로트가 흘러 나온다. 그렇게 시작된 트로트 메들리 때문에 또 다시 아이들의 얼굴에는 신명이 살아 난다. 아이들을 보시며 "아이고 고맙다, 아이고 착하다" 하시던 동네 어르신 분들도 아이들이 트로트에 함박 웃음을 지으신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마련된 오늘의 점심 메뉴는 떡국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 아무렇게나 바닥에 모여 앉아 먹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한 그릇에 모두가 행복해진다. 동그랗게 마주 앉아서 함께 떡국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앞으로도 이렇게 둥글게 살아가며 나눔의 행복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 사랑의 연탄 나눔 오전 내내 연탄을 배달하고 한 그릇 씩 받아 든 따뜻한 떡국 앞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
ⓒ 한성은


▲ 사랑의 연탄 나눔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모인 부산국제외고 1학년 학생들이 힘찬 다짐을 하고 있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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