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타박 아홉걸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2시간 동안 신나게 해 줄게 본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2시간 동안 신나게 해 줄게

한성은 2014. 8. 14. 17:32


원래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고민을 떨치고 속세를 벗어나려는 시도일 수 있지만, 나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컨텐츠이니만큼 머리든 가슴이든 인상적인 무엇인가가 남길 바라는 지적 허영이 있다. 그래서 흔히 액션물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게 본 히어로물은 베트맨 시리즈 중 다크나이트다. 선과 악에 대해서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주는 서사가 참 좋았다.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실존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꺼내들면 참 좋은 영화다. 그랬기 때문에 마블 시리즈 같은 심지어 천박한 히어로물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보고 (내가 처음 본 마블 히어로 영화다) 반했다. 말 그대로 반했다. 화려한 영상이야 그들의 무기겠지만 역시나 모두에게 던지는 실존적 의문이 참 좋았다. 문장이 너무 거창한 듯 싶다. 고질병이다.


군도, 명량, 해적으로 이어지는 2014년 여름 3부작에 완전히 지쳐버려 혹은 질려버린 참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았다. 재미있었다. B급 코미디를 표방하는 포스터부터 마음에 들었다. 가벼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간다. 롯데월드에서 자이로드롭을 타는데 어떤 철학적 고민이 필요할까. 그냥 그 짜릿한 순간을 즐기려는 것이다. 즐거움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긴 시간 줄을 서게 만들고, 비명을 지르며 찰나의 순간을 즐기고, 또 두려움에 떨며 긴 줄의 끝에 선다. 가끔은 머리를 쉬게 해도 되지 않을까?


잘려나간 이야기도 많고, 수없이 쏟아지는 등장인물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굳이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악당들이 죽어 나간다. 그리고 내 주위에 더 이상 죽음을 두지 않겠다는 주인공이 총을 쏘아 댄다. 전자총이니 아마 아프기만 하고 죽지는 않았겠지. 이리하여 나는 또 심플한 무언가를 배워간다. 신나는 음악을 듣고 위트와 개그가 뒤섞인 대사들 속에서 신나게 웃었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그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재미는 있는데 남는 것은 없다. 이 얼마나 천박한 먹물 같은 소리인가. 재미 없는 문장은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해도 무의미한 문장이라고 같은 입으로 뱉어왔다. 부끄럽기 그지 없다. 재미 있는 영화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런 영화를 만드는 일은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참 재미있는 영화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