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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본 교토 버스 3 :: 배려는 착한 것이 아니다

한성은 2016. 4. 3. 02:32

일본 시내버스 마지막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일본에서는 뒷문으로 승차하고 앞문으로 하차를 합니다. 일단 버스에 승차하면 앞쪽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마주 앉아 가도록 좌석이 배치되어 있고, 뒤쪽은 정면을 향하도록 독립된 좌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한 자리씩 있기도 하고, 두 자리씩 붙어 있기도 합니다. 처음 버스를 올라타고 우리나라와 다른 구조를 보며 ‘좌석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네’ 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배낭과 함께 앞쪽에 의자에 털썩 앉았습니다. 

버스에는 승객이 별로 없어서 널널했지만, 저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므로 무릎 위에 가방을 다소곳하게 올려놓고 예쁘게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 할머니가 쳐다봅니다. 큰 가방을 들고 타서 외국인 관광객임을 알고 흥미를 느껴 저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토까지 이동하여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탈 때까지 물론 그런 시선을 받은 적이 없어서 좀 의아했지만, ‘내가 좀 매력적인가?’ 하고 넘겼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승객들이 뒷문으로 계속 탑니다. 저는 다리를 쩍벌 하지도 않았고 별로 냄새가 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사람들이 다들 뒤에 가서 앉습니다. 심지어 예쁜 아가씨까지도 그랬습니다. '음.. 나는 할머니들에게만 어필하나보다'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그때까지 저는 목적지에 정확하게 잘 내려야 한다는 생각과 교토 시내의 풍경을 보느라 버스 안의 상황에 대해서 빨리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노약자와 임산부를 위한 교통약자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승차한 어린 학생들도, 젊은 아가씨도 버스 뒤쪽으로 가서 앉았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아차하고 주섬주섬 챙겨서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뒤에 앉아서 앞을 보며 생각하니 버스의 절반이 교통약자석이었습니다.
 


교통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물론 중요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참여했던 집회가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요즘은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때만 해도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휠체어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역이 드물었습니다. 저의 가족 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보니 교통약자들을 대하는 제도와 정책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스 전체 공간의 절반을 교통약자석으로 지정하고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에 조금 놀라면서 역시 친절과 예의의 나라 일본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벽쪽으로 길게 놓인 의자는 안기도 편하고, 하차하기 위해 앞문으로 가는 거리도 짧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교통약자들에게 참 좋은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일본 사람들의 배려심이 유별난게 아니라 단지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사람들을 쳐다보고 공공 시설물들을 주의깊게 보게 되었습니다. 출퇴근 러쉬아워 때에 버스를 타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평일 낮에 버스를 타거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 노인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일본의 고령화가 인구 비율과 증가 속도 모두 세계 최고라는 말은 들었는데, 교통약자석의 비율을 보니 확실히 실감이 났습니다.

 


2010년 기준(파란색)으로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는 11%이고 일본은 23% 입니다. 지금은 더 증가했겠지요. 일본의 공공 시스템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인 인구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일본인의 민족성이 좋다, 예의 바르다 등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제도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버스는 제가 사흘 동안 타 본 경험만으로 보았을때 모두 저상버스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저상버스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승하차 시에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버스가 많습니다. 최근에 서울을 갔을 때 서울역 버스정거장에서는 저상버스를 많이 보았습니다만 재정이 충분하지 못한 지방일수록 저상버스의 비율이 적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버스가 정차하여 문이 열리면 인도 쪽으로 살짝 기울어 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록 저상버스라 하더라도 일본의 버스처럼 승하차시에 인도쪽으로 버스가 기울어 지지는 않습니다. 대단한 기술이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승객을 위한 배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버스가 인도쪽으로 기울어지면 타고 내리는데 편하겠다’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젊고 건강한 나의 기준으로는 몇 안되는 교통약자들을 위해 세금을 들여서 버스를 전부 저상버스로 바꾼다든지,  저상버스를 위해 도로 위의 과속방지턱을 모두 낮게 바꾼다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내가 계단을 잘 다니기 때문에 보지 않는 것들 또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분명히 늙을 것이고 언젠가는 계단 하나가 버거운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을 노오력과 열정으로 보내지 않아 자가용이 없어서 버스를 타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바꾸면 늦습니다. 지금 바꾸어 놓아야 저의 노년이 편해집니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광고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 상상해 보셨나요? 라는 문장 속에는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이 되면 안된다’ 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라고 합니다. 인구 감소와 저출산으로 인한 고령화 사회는 결코 피할 수 없을겁니다. 이미 피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저 역시 현재 1인 가구이지만 행여나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은 한 명을 낳거나 안 낳을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제쳐놓고,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모든 가정이 자녀를 2명씩 낳아야 인구가 유지됩니다. 둘이 만나 1명씩 낳으면 세대를 지날 때마다 인구는 기하급수로 감소합니다. 거기에 1인 가구가 50%에 육박한다면 세대를 지날수록 인구는 1/4로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고령화 사회는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의 노년을 위한 준비입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다양한 이익 집단들이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자유 경쟁과 높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둡니다. 복지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일련의 문제를 ‘노오력’과 ‘가격 대비 성능비'의 문제로 인식합니다. 교통약자들을 향해 저상버스 확대를 요구하지 말고 ‘노오력’을 통해 일반버스를 타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를 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계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자 보험 상품을 보는데, 체류 예정국에 미국이 있으면 보험료가 2배가 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의료 복지 시스템은 국가 의료 보험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입니다. 미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친구가 “미국에서 다치거나 아프면 무조건 한국행 비행기를 타라” 고 알려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절대 아프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에서 ‘아프지 말아라.’ 는 비문입니다. 형용사 명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늙지 마세요.’, ‘병들지 마세요.’, ‘힘들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복지는 착한 사람들이 가진 착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너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자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당신은 100%의 확률로 늙고 병들게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