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타박 아홉걸음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49 :: 뉴욕현대미술관(MoMA)서 반 고흐를 만나다 본문

여행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49 :: 뉴욕현대미술관(MoMA)서 반 고흐를 만나다

한성은 2018. 7. 21. 02:37

바람이 또 왜이리 부나 봄꽃도 벌써 지는데

걷다가 올려다 본 하늘 어쩌면 저리도 푸른가

구름이 또 흩어지려네 왜 그냥 있지를 못하고

어느 것 내 맘대로 하나 담을 수도 없는 오늘은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걷고 또 걸어 지칠 때쯤 되면

털썩 주저앉은 그곳에서 너를 지워버리련다

- 정밀아, '그리움도 병' 노랫말 중에서



하늘이 어쩌면 저렇게 푸를까 하며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걷고 또 걸어 지칠 때쯤 되서 컬럼비아 대학교에 도착했다. 컴럼비아 대학교는 세인트 존 디바인 대성당 바로 옆에 있었다.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교 중 하나라서 캠퍼스도 엄청 으리으리하고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도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뭔가 묘한 매력이 철철 넘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캠퍼스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오히려 그 명성에 비해서는 소박하다고 느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부지의 넓이와 건물이 크기는 학문의 깊이와 비례하지 않았다.


지인이나 제자가 있어서 캠퍼스를 소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도서관이라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재학생이거나 사전에 견학 허가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다. 도서관 앞에 서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유심히 봤는데 뇌 용량이 특별히 커보이지도 않았다.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말해줘야겠다. 너희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더라고.


나같은 관광객들이 캠퍼스에 들어와서 구경한답시고 이렇게 사진을 찍고 다니면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될까 싶어서 금방 나가려는데,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인솔교사와 함께 우루루 지나가는 걸 보면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행렬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는 너무너무 부러웠다. 진심으로 그들을 따라 인솔교사인 척하고 같이 들어가고 싶었다. 사실 몇 걸음 같이 걷기도 했는데, 행여나 들켰을 때 내 짧은 영어로 도저히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생각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까? 그때도 안 했던 공부를 다시 돌아간다고 더 열심히 할리도 없지만, 이 물가 비싼 뉴욕에서 유학을 했다가는 우리집 온가족이 아마 매일 보리밥에 간장만 찍어 먹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생이 아니라 관광객으로 컬럼비아 대학교에 온 것은 참 다행이라고 지나간 과거에 대해 혼자 변명을 만들었다. 그나저나 컬럼비아 대학교 학생들은 책을 볼 때 눈에서 불이 나오나 궁금했는데 도서관 그늘 밑에서 책을 보는 학생의 눈에서도 특별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실 오늘은 내가 눈에 불을 켜야 하는 날이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16:00~20:00)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지하철을 타고 뉴욕현대미술관 앞으로 왔다. 미술관 입장료 25불을 아꼈으니 오늘은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외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1990년에 처음 시작하여 지금은 미국에만 200개의 매장이 있고 뉴요커들에게는 소울 푸드(soul food)가 된 '할랄 가이즈(Halal Guys)'가 나의 첫 번째 외식 메뉴였다. 다양한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상표명이 그냥 음식 이름과 같았다.




노란색 비닐봉투를 들고 여기저기 앉아서 밥과 고기를 먹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8달러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참고 지나쳤었는데, 마침 MoMA를 가는 날이기도 하고 든든하게 먹어야 그림도 눈에 불을 켜고 더 잘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푸드트럭 앞으로 길게 이어진 줄의 끝에 나도 쫄래쫄래 가서 섰다. 일회용 알루미늄 도시락에 가득 담긴 밥과 고기를 보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보니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을 먹는 순간이기도 했다.


닭고기(chicken)와 자이로(gyro)가 섞여 있는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양고기가 아니라 소고기인 것 같았는데 밥 한 그릇을 마시듯이 먹어서 사실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밥과 고기가 아주 많아서 한 사람 분량은 아닌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아저씨는 1/4 정도 먹고 뚜껑을 덮어 집으로 가져가던데 나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포만감이 느껴지기 전에 다 먹기 위해서 푸드파이터처럼 얼른 마셨다. 




밥을 먹고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조형물을 보러 갔다. 뉴욕에 왔으면서 이 작품을 안 보고 지나갈 수는 없으니까. 로버트 인디애나는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던 팝 아티스트다. 하지만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내가 뉴욕으로 오기 한 달 전에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떤 예술가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로버트 인디애나도 참 박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앤디 워홀은 팝 아트를 통해 스타가 되었고 복제된 그의 시뮬라크르들은 원본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려나갔지만, 인디애나는 전세계로 퍼져나간 자신의 'LOVE'를 통한 수익이 MoMA로부터 디자인료로 받은 단돈 1000달러가 전부였다. 앤디 워홀과 달리 인디에나는 오히려 전세계에서 마구 복제되면서 시뮬라크르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인디애나도 저작권 신청을 했지만 특정 단어는 저작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법원의 판결이었다. 그래서일까? 1978년에 뉴욕을 떠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40년을 은둔하며 생활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현재도 맨해튼 법원에서 인디애나 작품의 모작과 관련한 소송이 또 진행되고 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예술품에 의해서 고통을 받다가 삶을 마감했다.



무료 입장 시간에 맞춰서 MoMA로 가니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우루루 걸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인파에 떠밀려 미술관이 있는 블럭을 한 바퀴 돌아 줄을 섰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제대로 작품을 볼 수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MoMA에 들어간다는 기대에 부풀어서 서 있는데, 막상 입장이 시작되니까 줄은 엄청 빨리 줄어들었다. 미술관 안내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정문 앞에서 바로 티켓을 받고 입장을 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물론 미술관 내부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두세 번 정도 MoMA에 더 올 예정이라 서두르지 않고 먼저 앱스토어에서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를 내려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미술관에서도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무료로 대여해 주는데 이미 남은 기기가 없었다. 앱을 설치하면 편하게 스마트 폰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으니 이어폰을 챙겨가면 좋다. 전부는 아니지만 주요 작품들은 한국어 가이드도 준비되어 있었다. MoMA의 주요 소장품 상설 전시는 주로 5층에서 했고, 내가 갔을 당시에는 6층 전관에서 아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의 회고전이 진행 중이었다.





상설 전시실은 제대로 걸어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일단 특별전부터 보러 갔다. 아드리안 파이퍼는 미국 사회의 인종, 계급, 소외 등의 문제를 고발하는 개념예술가다. 모든 작품에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예술관 덕분에 개념 예술인데도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작품 속에 강한 메시지를 담은 문장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서 처음 작가를 접하는 관객들도 작가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현대의 예술 작품들이 그렇듯 모호하고 어려운 작품들도 많았다.


영문 웹사이트를 찾고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해외 여행을 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분명 내 앞에 내가 궁금해 하는 모든 정보가 다 펼쳐져 있는데 빨리빨리 읽지를 못해서 그 궁금증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참 많다. 작품 설명을 한줄 한줄 꼼꼼하게 읽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해서 내 자신에게 속상하고 화가 났다. 지금까지 공부 안하고 게으르게 살았던 벌을 이런 순간에 한꺼번에 받는 것일테다.


5층 전시실에는 그동안 책으로만 보던 작품들이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듯이 전시실 안에 가득 걸려서 반짝이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렇게 그림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별 다른 관심도 없었다. 그냥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나 역사책, 철학책에 나오는 유명한 작품들만 봤을 뿐이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직접 그 그림들을 보게 되었고, 어쩌면 다시 못 볼 그림들인데 제대로 알고나 보자 싶어서 틈틈이 공부를 하다보니 MoMA에 와서도 몇몇 낯선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정도가 됐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궁금한 것도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대체 그림이 뭔데 이렇게들 난리인가 싶어서 읽은 책 한두 권이 배움의 재미를 주었고 그 조금의 배움이 자꾸 다음 질문을 만들어 내고 그걸 찾아 헤매다보니 뉴욕에까지 오게 되었다. 여행이 나에게 준 선물이 그림이었고, 그림이 나를 다시 여기에 데리고 온 것이다.


빈세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yy Night)>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높이 팔을 치켜든 일정 바쁜 관람객들의 뒤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진짜 뉴욕현대미술관에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뉴욕에 오길 참 잘했다고 오랜만에 스스로를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