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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58 :: 라이프치히 미술관 MDBK 본문
유럽 사람들은 자전거를 정말 사랑한다. 자전거가 없었으면 이들은 어떻게 이동을 하고, 어떻게 여가를 보냈을까 싶다. 조카 고래가 다니는 라이프치히 유치원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자전거 타는 날을 정해놓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5살이면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다니나? 나는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작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탔던 것 같은데 독일 아이들은 너댓 살 정도면 두발 자전거를 타고 아빠와 함께 공원을 달린다. 도로 위에는 자전거를 위한 레드카펫까지 깔려 있는데 자전거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도 라이프치히 미술관(Museum der bildenden Künste Leipzig)으로 가려고 오랜만에 자전거에 올라 탄다. 뒷자리에 고래용 시트도 달려 있으니 누가 보면 동네 주민인 줄 알겠지? 힘차게 패달을 밟는다. 어라? 너무 힘들다. 패달 세 번 밟았는데 허벅지 근육이 끊어지고,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다. 30대에는 자전거로 제주도를 몇 바퀴나 돌았는데, 이제 늙은 건가? 아니, 운동 부족일 뿐이야. 백발 무성한 할아버지가 로드 자전거를 타고 웃으며 지나갔다. 호치민으로 돌아가면 나도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쨌든 지금은 나는 걷는 걸 잘하니까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기자.
라이프치히 미술관은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다. 1837년에 설립된 후 2004년에 지금의 위치에 새 건물이 완공되었다. 중세와 근대가 공존하고, 네오 르네상스 건축과 사회주의 Plattenbau 건축이 나란히 서 있는 라이프치히에서 홀로 우뚝 솟은 하이테크 건축이다. 정육면체의 외관을 모두 유리로 감싸 일조량을 높여 에너지 효율은 물론 주변 건물과도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라이프치히 미술관을 보면 이 도시가 가진 역동성이 느껴진다. 독일에서 젊은 층의 인구 순유입이 가장 많은 도시라는 게 실감이 났다. 현대 사회에는 정체는 곧 도퇴다. 라이프치히는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도시 같다.
커다란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청난 높이의 천고 아래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의 <베토벤> (1902)이 반겨 준다. 막스 클링거는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그는 독일 출신이지만, 1898년부터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이끌었던 빈 분리파(Wien Secession)의 명예 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1902년 베토벤 서거 75주년을 기리는 빈 분리파의 대규모 전시회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와 막스 클링거의 조각 <베토벤>이 메인 홀의 중심에 배치되었다. 이를 통해 빈 분리파 내에서 막스 클링거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빈 분리파는 새로운 예술을 지향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베토벤을 추앙했다. 베토벤이 교향곡을 확대하고, 소나타 형식을 변형하면서 고전주의 음악과 결별했듯이, 빈 분리파 역시 신고전주의적 아카데미 미술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을 보면 환희의 송가를 작곡한 영웅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한 왕좌에 웅크리고 앉아서 앙다문 입술로 고민에 빠진 나약한 인간이 보인다. 모두가 영웅 베토벤을 바랐지만, 막스 클링거는 인간 베토벤을 통해 빈 분리파가 본받아야 할 베토벤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베토벤 앞의 검은 독수리는 독일의 상징이자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술을 위해 고뇌하는 베토벤의 정신과 그의 음악이 복음처럼 온 세계에 퍼지기를 바라는 막스 클링거의 바람을 담은 것이 아닐까?
라이프치히 미술관에는 <베토벤> 뿐만 아니라 막스 클링거가 남긴 많은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종합주의 예술을 지향하는 막스 클링거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대표작 <파리스의 심판> (1886)과 제작 기간만 10년이 걸린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1890) 그리고 전성기의 대표작 <올림포스의 예수> (1893)는 그의 사후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 있었다. 빈의 벨베데레에 가야 볼 수 있는 작품을 라이프치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이 적극적으로 수집에 나선 결과일 것이다. 문화의 힘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도시에는 왜 유명한 사람이 없냐고 푸념할 것도 아니다. 막스 클링거 역시 당대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한동안 잊혔다가 라이프치히의 노력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처럼 널리 알려진 화가들 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수원시립미술관의 나혜석, 진주시립미술관의 이성자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존하며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싼 낙찰가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는 스타작가가 탄생하는 데는 작가 자신의 내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후세의 관심과 노력도 꼭 필요하다. 한국 추상화가 유영국 화백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와 비교해 놓고 보아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 내가 마크 로스코를 보기 위해 미국에 갔던 것처럼, 미국 사람들도 유영국을 보기 위해 한국에 오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라이프치히 미술관은 특별전을 제외한 상설전에 한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었다. 미술관의 외부 위용에 놀랐다가 상설 전시가 무료라는 말에 또 놀랐고, 무료로 공개하는 미술관의 컬렉션이 얼마나 알차고 대단한지 터져나오는 감탄사를 입틀막했다. 눈이 마주친 미술관 경비원에게 “Collection is truly remarkable!”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화의 시작 얀 반 에이크,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틴토레토, 플랑드르 바로크의 페테르 파울 루벤스, 네덜란드 바로크의 렘브란트, 바르비종파의 카미유 코로, 테오도르 루소, 장 프랑수아 밀레를 거쳐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까지 흔히 쓰는 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미술관이었다. 이들 작품 하나면 작은 미술관 하나를 세울 수도 있을 정도인데, 어떻게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미술관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올드 마스터의 작품이 아니라, 시립미술관이 가진 배려심이었다. 네덜란드 바로크시기 정물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라헬 라위스(Rachel Ruysch)의 바니타스 정물화 앞에 섰을 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시 보조도구가 있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미술관들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회화 작품을 감상할 때 사용하는 점자화는 처음 봤다. 회화는 절대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예술이지만, 이런 도구를 활용해서 대략적이라도 장애인들이 정물화의 윤곽과 질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있었다.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는 정말 값비싸고 화려한 꽃들과 식탁 위의 정경을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하여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네덜란드 정물화를 헛됨, 허무, 덧없음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라고 부르는 이유는 화려한 꽃도 화무십일홍이고, 산해진미를 먹고 금은보화를 가진 사람의 인생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금욕적인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같이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조금씩 양보하면 좋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유럽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미술관에서 올드 마스터의 회화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내 것’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진짜 ‘내 것’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내 목숨마저도 결국은 놓고 가야 할 바니타스의 삶이 우리 인생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닌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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