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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60 :: 드레스덴에서 천사와 커피를 마시는 방법 본문
독일의 어느 도시가 그러하든 드레스덴 역시 구시가지를 돌아보는 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체코의 수도 프라하까지 자동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이기 때문에 해가 긴 여름 시즌에는 하루만에 두 도시를 모두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엘베의 피렌체로 불리는 드레스덴의 예술적 역량은 단지 바로크 풍의 도시 외관에만 있지 않다.
오전 동안 드레스덴 구시가를 타박타박 걸 어다니다가 오후에는 츠빙거 궁전에 있는 드레스덴 고전회화 미술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을 둘러본 후 가장 최근에 복원이 완료된 젬퍼 오페라 하우스(Semperoper Dresden)에서 공연을 보고 나와서 드레스덴의 야경까지 충분히 즐기는 것이 드레스덴 여행의 완성이다. 어느 곳도, 어느 것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드레스덴 구시가의 중심에는 츠빙거 궁전(Zwinger Palace)이 있다. 작센의 선제후였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us the Strong)가 자신의 권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기에 바로크 양식 특유의 화려하고 웅장한 위용이 돋보인다. 그의 권위와 부는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으로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대단하다. 츠빙거 궁전은 내부에 정방형의 정원을 갖고 있는데 아쉽게도 2024년 현재는 복원공사 중이다.
고전회화 미술관은 츠빙거 궁전의 동쪽 윙에 자리잡고 있었다. 미술관의 0층은 특별전, 1층과 2층은 상설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침 내가 간 날의 특별전은 <Timeless Beauty: A HISTORY OF STILL LIFE>로 정물화 장르에 대한 대규모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정물화의 시작은 네덜란드다. 다른 지역에서도 정물화를 그렸을 지 모르겠으나, 1650년대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정식 장르 명칭으로써 정물화(Stilleven)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무척 귀환 캔버스 천 위에 그것보다 더 귀한 안료를 개어서 왜 하필 정물을 그렸을까?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소중한 사람도 아닌 접시와 잔 그리고 꽃과 과일 따위를 그린 이유는 뭘까? 17세기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서 물어볼 수는 없기에 시선을 요즘의 SNS로 돌리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소유한 것들 중에 꼭 보여주고 싶고,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남고 싶은 것들이 SNS에 게시되고 거기에 사람들은 하트와 좋아요를 누르며 반응한다. 1637년 네덜란드 튤립파동 당시 희귀한 튤립 구근의 한 뿌리의 가격이 숙련공 연봉의 10배에 이르렀으니, 이 시기를 전후해서 그려진 꽃 정물화는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다. 당시 사람들도 지금처럼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SNS의 게시물은 예술이라 부르지 않고, 네덜란드 정물화는 예술이라 부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은 메시지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SNS의 게시물은 인간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만, 네덜란드 정물화는 그 속에 욕망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정물화가 얀 다비츠 데 헤임(Jan Davidsz de Heem)의 <메멘토 모리. 해골 옆의 꽃병> (1660)은 작품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바니타스 정물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그리고 해골은 죽음을 의미한다. 캔버스 안에는 화려하고 희귀한 꽃이 26가지, 나비와 벌을 포함한 곤충이 11가지 그려져 있다. 화면 상단에는 꽃들이 만개해 있지만, 하단에는 고둥 껍데기 아래에 놓인 편지지에 작가의 이름과 함께 Memento Mori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고둥 뒤에는 비스듬히 놓인 해골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네덜란드 정물화 속에는 이 모든 부귀영화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를 집집마다 하나씩은 소장하고 있었을 네덜란드는 이 교훈적 메시지를 잘 새겨들었을까? 네덜란드 황금시대는 튤립 광풍이 꺼지자 경제가 몰락했고, 영국에게 세계 패권을 넘겨주며 막이 내린다. 꽃은 손에 쥐었으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메시지는 가슴에 새기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예술이 전하는 메시지가 당대에만 그쳤다면 고전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지금 인류에게도 유효한 교훈이다. 그림은 손에 쥘 수 없어도, Memento Mori는 손에 꼭 쥐고 살아야겠다.
1층으로 올라가서 상설전을 둘러봤다. 미술관은 6시까지 운영하니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1층 전시관 입구부터 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미술품 복원 작업을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품 복원 작업을 완전히 공개해 놓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까지 수많은 미술관을 다녔지만 작업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이 지긋한 여성 복원사 두 분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냉정과 열정사이>의 OST를 틀었다. Between Calm and Passion의 첼로 선율이 귀에서 흐르자 그 자리에서 나는 쥰세이가 되었다.
스무살의 내가 되었다. 개연성이라곤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장면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아스라한 나의 스무살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복원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복원사들의 단조로운 작업 풍경은 무한히 반복되는 오토리버스처럼 이어졌고, 소리 내어 부르고 싶은 이름들이 내 입술 끝에서 소리 없이 흘렀다.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BGM을 바꿔야했다.
플레이리스트를 임윤찬이 연주하는 리스트 연습곡으로 바꾸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1659)가 벽에 걸려 있다. 열린 유리창에 비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이렇게 아스라히 따뜻하게 그릴 수 있는 화가는 페르메이르밖에 없다. 전경을 가린 녹색 커튼이 금방이라도 이 장면을 가릴 것처럼 펄럭인다. 여인은 밝은 햇살 앞에 서서 편지를 읽고 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침대 위의 과일 접시에서 과일들이 굴러떨어지는 것도 모른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을까?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여인의 머리 위에서 큐피드가 활을 들고 웃고 있다. 바니타스고 뭐고 할 수만 있다면 내 방 창가에 걸어 두고 매일 인사하고 싶은 그림이었다.
드레스덴 고전회화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Gemäldegalerie Alte Meister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옛 거장의 회화 갤러리’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미술관에는 그야말로 회화 분야에서 Old Master의 작품들이 가득했다. 중세회화부터 피렌체,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지나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그리고 스페인의 바로크를 거쳐 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까지 정말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고전 거장들은 빠짐 없이 모여 있었다.
서너 시간은 커녕 모든 작품을 감상하려면 이틀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아쉬운 것이 시간이다. 수많은 거장들을 뒤로 하고 이 미술관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대작을 보러 갔다. 티치아노, 루벤스,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푸생.. 앞으로 가야한다는 이성과 모든 작품을 눈에 담아야 한다는 욕망이 줄다리기를 했다. 진짜 했다.
드레스덴 고전회화 미술관을 대표하는 단 한 작품을 꼽는다면 바로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틴의 성모 Madonna Sistina> (1514)이다. 사실 이 작품이 라파엘로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바티칸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도의 변용> (1520)을 보면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라파엘로의 죽음에 진심으로 속상함을 느꼈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유명한 이유는 화면 하단에 턱을 괸 아기 천사들 때문이다.
시스틴 성당의 제단화로 걸릴 때 작품 속 아기 천사들이 턱을 괴고 있는 액자는 실제로 성당의 창틀 높이와 같았다. 라파엘로는 작품이 걸리는 곳의 높이와 환경을 고려하여 이 귀여운 아기 천사를 그려 넣은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정말로 천사들이 날아와서 창틀에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카페 체인점에서 이들 천사를 모티프로 로고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굉장히 친숙한 작품이 되었다. 예술이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좋은 사례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전시 상의 문제가 있었다. 대형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씌워 놓은 유리가 전시실의 천장 조명과 부딪혀서 작품을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가 없었다. 유리와 조명 때문에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미술관의 얼굴인데 이렇게 전시를 해놓다니..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야 하고,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오히려 더 안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작품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작품의 빛 반사 때문에 다른 관객들도 작품 가까이에 가지 않고 멀리 물러서서 본다는 것이다. 큐레이터가 이것까지 고려한 것일까? 설마.
큐레이터의 의도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건 절반만 성공한 계책이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해 모두들 성모자 보다는 아기 천사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기 천사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잘 보였다. 그나저나 이 귀여운 아기천사들만 보면 왠지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다. 참으로 진부하고 단순하지만, 실제로 그런 걸 어떡하나.
미술관 밖 드레스덴 구시가에는 멋진 카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나는 멋진 카페 옆 벤치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를 멋지게 마셨다. 헤드폰에서는 진부하고 단순하게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가 흘러 나왔다. 김성호 아저씨의 목소리와 드레스덴 구시가지의 풍경은 참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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