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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범인은 이안에 없다 :: 범인을 만나다

한성은 2016. 2. 29. 00:25
딴지일보 부편집장 죽지 않는 돌고래 김창규의 인터뷰집을 읽었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가끔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딴지일보 사보 ‘똥꼬깊수키’를 통해서 매달 그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뷰어인 죽돌 김창규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전공이 일본 문학이었구나.’ 정도를 행간을 통해 알게 된 정도가 전부입니다.

다만 질투 나는 점이 있었습니다. 죽돌 김창규는 나보다 어린데 이런 당대 최고의 인물들을 만나서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라는 표현은 물론 비문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몇 명의 인터뷰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책을 냈다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김창규 의문의 1승. 인터뷰를 이끌어 가는 흐름도 좋았고, 모든 말을 다 옮기지 않고 문맥 안에 남겨 놓은 것도 참 좋았습니다. 고급진 보그병신체 제목이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은 처음 표지를 봤을 때부터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책장을 덮어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퇴직을 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는 저로서는 계획에 없던 충동구매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충동독서를 하였습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돈이라고 했던가요. 참으로 맞는 명제입니다. 적어도 지금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우연히 노란 표지가 눈에 들어 왔고, 좋아하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새내기 때 큰 울림을 주었던 인터뷰집 ‘춘아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후로 인터뷰집 읽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집어 들고 서점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책값 15,000원을 아꼈다고 씩 웃다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을 리뷰를 남깁니다. 하지만, 많이 미안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더 딴지’ 창간호부터 ‘똥꼬깊수키’ 제38호까지 정기 구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지 뭐… (죄송합니다. 리뷰 열심히 쓰겠습니다. )


인터뷰집은 이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평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 한 사람들이니 (그래도 굳이 한다면 구구절절 미사여구를 남발하게 되겠지요) 인터뷰 내용에 대한 것들은 제쳐놓겠습니다. 물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 봄 직하지만, 인터뷰 시기와 질문의 흐름을 보면 당대성이 있는 질문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부분은 저 역시 지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책 속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담배를 태우며 속도 태우고 나의 애간장도 태우고 사라집니다.

당대성이 적다는 것은 인터뷰집으로서 독자들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터뷰집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고, 더 넓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넓은 독자층이란, 일반 대중 전체는 아니고 저보다 어린 친구들을 한정하는 단어입니다. 오랫동안 그랬고 또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살겠다고 다짐하며 지내다 보니 단어를 조금 편협하게 사용합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소개하는 인터뷰집으로서 참 잘 짜인 책입니다.

다만, 평소 인터뷰이들의 사상이 담긴 글과 그들의 궤적에 관심을 갖고 있던 독자라면 질문의 소재가 식상할 수 있습니다. 죽돌 김창규도 책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직접 귀로 듣고 싶었다.’ (책을 옆에 두고 있지 않아서 적확한 인용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이 문장에서 처음 이야기 했던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가 아닌 사람의 궤적을 옮겨 놓으며 그들의 사상, 가치, 사고가 담긴 문장들 속에 빛나는 명제들이 책 속에 있습니다. 두어시간 책을 읽으면서 뭉클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 몇 개의 문장들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전략가 ‘이철희’ 입니다.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기는 싸움에 대하여’ 라는 소제목부터 별로 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소제목이 ‘이기는 싸움’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정도전에 자신을 비유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니 반해버렸습니다. ‘이기는 싸움’이란 것은 철이 들고 세상에 관심을 가진 그때부터 정말 정말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간절했던 부탁이었습니다. 이철희 씨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말과 글이 참으로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썰전’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 조차 몰랐습니다. (더욱이 종편이라니…)


이철희 씨의 책이 공교롭게도?! 가판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 권이나. 이 분이 유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게을러 터졌었기 때문이겠지요. ‘전략가’ 라는 단어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제갈공명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전략가’라니.. 왠지 L.O.L에서 써야 할 단어 같은데 정말 멋지게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인터뷰 집에 이철희 씨를 실어서 저에게 소개해 준 죽돌 김창규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정작 내 돈 주고 산 책은 읽고 그냥 넘기는데, 서점 바닥에 앉아서 읽고 나온 책은 긴 시간 공을 들여 리뷰를 쓰네요. 속죄의 의미도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죄를 지은 건 아니잖…. 쿨럭)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 있게 읽은 인터뷰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주진우 기자의 인터뷰를 읽으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그냥 반갑네요.
**이외수 선생님 오래 오래 사세요.
***유홍준 선생님 지금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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