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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신이 산다 :: 신은 합리주의의 저주를 주었다. 그러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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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 신이 산다 :: 신은 합리주의의 저주를 주었다. 그러나.

한성은 2016. 3. 4. 12:01


신은 인간에게 ‘합리주의’라는 저주를 주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으므로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간은 또 합리적인 사고를 합니다. 죽음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내일을 한 달을 일 년을 십 년을 삼십 년을 준비합니다. 저 집단이 우리 집단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상대를 미리 제거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로 전쟁을 일으키고 학살합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배움의 기쁨보다는 경쟁과 서열화의 고통 속에서 불안해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참고 열심히 하면 눈부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참으며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은 곧 좋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참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야기합니다. ‘지금 참고 열심히 하면 눈부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참으며 살아갑니다. 좋은 직장은 곧 좋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참습니다. 그리고 회사원들은 이야기합니다. ‘지금 참고 열심히 하면 눈부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참으며 살아갑니다. 많은 월급은 곧 좋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참습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神이자 주인공 ‘에아’의 아빠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 1도 알 수 없게 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죽음을 대처하는 자세로 불안을 선물합니다. 그 결과 지옥 같은 브뤼셀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주인공 ‘에아’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선물합니다. 모두가 핸드폰을 통해서 자신이 언제 죽게 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인간 세상은 곧 대혼란이 벌어집니다. 순간 ‘에아’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후회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 ‘에아’가 여섯 사도를 만나는 과정에서 ‘에아’가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미래도 준비합니다. 이제는 막연하기만 한 공포로 가득 찬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정해진 시점에서 끝이 날 것이며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오늘을 하루하루 쌓아서 삶을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혼란은 사라졌고, 생명보험 같이 죽음을 통한 공포 마케팅은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은 더 많이 산책을 합니다. 그리고 멋진 죽음을 위해 생의 마지막 날에는 바닷가로 몰려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는 수학 문제 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낫지 않냐고 했더니, 책을 읽다가 수능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냐고 다른 선생님과 부모님께 혼이 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은 곧 문제집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수능 공부를 하고 있을 거야?” / “당연히 아니죠. 수능 때문에 공부하는 건데…” / “그럼 수능을 치고 시험장에서 나오는 길에 죽는다면, 오늘 수능 공부하고 있을 거야?” / “당연히 아니죠.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 건데…” / “그럼 대학교 1학년 때 죽는다면, 오늘 수능 공부하고 있을 거야?” / “당연히 아니죠. 좋은 직장 구하려고 수능 공부 하는 건데…" 

"그럼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있을 거야?" / "적어도 수능 공부는 아니겠죠. 엑소를 만나러 간다든가, 엄마랑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너는 안 죽어?"
"...????" 

라틴어 격언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하면 “너의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 정도가 됩니다. 언제나 죽음이란 불안에 벌벌 떨지 말고,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올 죽음이란 마지막을 항상 정면으로 마주 보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神은 우리에게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내던졌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오늘 따위는 깡그리 잊어도 된다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죽음을 마주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며, 불행의 끝은 불행일 것이라는 불행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神은 우리에게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찬미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실존實存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