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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16 :: 활화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 해변에서 수영을 하는 시칠리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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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16 :: 활화산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 해변에서 수영을 하는 시칠리아

한성은 2016. 9. 25. 00:16

별을 보지 않아도 좋아

마음먹은 대로 간다면

우리는 바다를 건널 거야

저 거친 참치들처럼

어젯밤 전화기 너머

한숨소리처럼

꽉 막힌 세상 우리들은 어디쯤에

성난 파도 폭풍우가 와도

나는 헤엄치네

나의 섬을 찾아서

- 전기뱀장어, ‘거친 참치들’ 노랫말 중에서


사진 1. 시칠리아의 상징은 해발 3,350m의 에트나 화산이다.


참치들이 본능에 따라 거친 바다를 향하는 것 여행자들은 항상 거친 자연을 동경한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에서 숨막히는 일상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활화산’이라는 한마디에 우리 일행들은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다. 에트나(Etna) 화산 투어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에트나 화산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3,350m)이다. 2013년 대규모 화산활동이 있었고, 지난 화산 활동이 관측되어 시칠리아 전체를 긴장하게 했다. 지금도 연기를 뿜고 있는 이 화산의 분화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전문 가이드를 동행하여 산을 오른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해발 2,000m에 있는 공영 주차장(Rifugio Giovanni Sapienza)까지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서부터 트래킹을 해도 되고, 곤돌라를 타고 해발 2,500m까지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 일행은 곤돌라 투어까지 하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에트나 화산으로 가는 길이 동부 해변으로 가는 길과 겹쳐서 교통 체증이 심하다며 호스트는 오전 8시 전에는 출발하라고 이야기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조식으로 나온 빵은 어제와 달리 크림도 조금 들어 있어서 일행들을 흥분하게 했다. 느긋하게 먹을 시간이 없어서 모두들 손에 한 개씩 쥐고 차에 올랐다. 오늘도 역시 날씨는 맑았다. 맑다는 말은 곧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 뜨겁다는 말과 같다. 출발 전에 어제 긁힌 렌터카 앞범퍼의 상처를 손으로 쓰다듬는데 내 심장이 긁힌 것처럼 아리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숙소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니콜로지(Nicolosi) 시까지 막힘 없이 시원하게 달려왔다. 오르막으로 접어들자 깊은 숲이 우리를 반긴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손에 잡힌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깨끗한 공기가 폐 안에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하염없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무가 사라지고 시커먼 화산재와 화강암으로 뒤덮인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활화산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잠깐씩 보이는 카타니아 시와 시칠리아의 경계는 지금 달리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올라가는 이 높은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탈리아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도 유명하지만, 자전거로도 유명한 나라다. 나도 한국에서 한여름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던 적이 있을 만큼 자전거를 좋아한다. 자전거 잡지에서나 보던 고급 브랜드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허벅지가 터질 듯이 페달을 밟으며 에트나 화산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제주도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 한라산 1100고지를 넘어가는 도로가 있다. 한번 넘어가 볼까 했었는데, 자동차로 넘어가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비하면 한라산은 초보자 코스였다. 산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완만한 길이 아니라 비탈면을 타고 올라가는 경사진 길이라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대단하다며 힘내라고 인사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아침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신나게 내려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자전거 때문에 놀라는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참을 운전해서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언덕 아래에 화산 폭발 때 화산재 속에 파묻혀버린 집이 나타났다. 주변에는 이미 이곳을 보기 위해서 대형 버스와 소형 차량이 주차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경을 갔다. 구경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화산 폭발 때문에 집을 잃었을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신기하다며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쉬지 않고 달려와서 잠깐 쉬어가자는 마음도 합해서 핑계를 만들어 차를 세웠다.

사진 2. 지난 번 화산 폭발 때문에 화산재 속에 파 묻힌 주택


마침 차를 세운 장소의 전망이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탁 트인 언덕에 올라서니 저 멀리 지중해까지 한번에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햇볕은 여전히 쨍쨍했지만, 고도가 높아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일행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다들 어떻게든 그 풍경을 담아 보려고 아등바등했다. 온갖 자세를 취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길을 건너 땅속에 파묻힌 집을 보러 갔다. 집은 지붕만 겨우 남아 있었다. 화산 폭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바닥에 가득한 현무암을 손에 쥐어 보았다. 그저 화산재가 굳은 것인지, 용암이 굳은 현무암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만들어 진지 몇 년 되지 않은 싱싱한(?) 암석을 만져 본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돌은 분명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따뜻한 것일 텐데, 손에 쥔 온기가 혹시 용암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을 신기하다며 구경하는 마음이 불편한 일은 오래 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또 산을 올랐다.


나름 일찍 출발한다고 왔는데 주차장은 이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핸드폰 고도계는 해발 2,000m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가 출출해서 챙겨 온 빵을 먹으려고 꺼냈는데 비닐봉지가 곧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기압이 낮아져서 봉지 안의 공기가 팽창한 것이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데도 직접 눈으로 보니 그것도 신기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신비로운 곳인지, 빵 봉지 하나를 들고 우리는 모두 감탄했다. 그리고 1ℓ짜리 생수를 3유로(4천 원)나 받는 매점을 보며 또 한 번 감탄했다.

사진 3. 해발 2,000m에 있는 에트나 산 주차장

사진 4. 바닷가에 있는 숙소에서 가져온 빵 봉지가 산 위에 올라오니 터질듯이 팽창해 있었다.

사진 5. 곤돌라를 타면 해발 2,500m 지점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왕복 곤돌라 티켓은 무려 30유로였다. 처음엔 잘못 알아들었나 싶어서 몇 번 되묻기까지 했다. 그리고 더 높이 올라가는 화산 투어 전용 차량을 타려면 60유로를 내야 했다. 혼자였다면 고민을 좀 했을 것 같은데, 일행이 많다 보니 결국 처음 계획대로 곤돌라만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해발 2,500m만 해도 이미 백두산보다 높았다. 고산병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원래 이곳에는 커다란 스키장이 있었는데 화산 폭발 때문에 스키 슬로프가 사라졌고, 스키 리프트도 모두 망가져 있었다. 지금 운영하는 곤돌라는 화산폭발 이후에 새로 만든 시설이었다. 시칠리아는 과거에도 에트나 화산 때문에 도시가 완전히 묻혀 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고, 그곳에 또 터전을 일구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다. 이곳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시칠리아 인들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하늘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자리 위에 또다시 삶을 이어가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에트나 화산을 올라가며 아래로 보이는 망가진 스키 슬로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처럼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곳에서부터 천천히 트래킹을 하며 올라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등산로가 아니라 산등성이를 그대로 타고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하고, 화산재로 뒤덮인 바닥은 단단하지 않고 푹푹 빠졌다. 그리고 고도가 높아 시원하다곤 하지만 하늘 위에는 한여름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안전 장비를 갖춘 사람들이 줄지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걸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자전거로 올라가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정말 힘들고, 지겹고, 재미없고, 심지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일이다. 매끈하게 잘 포장된 도로에서도 그런데 화산을 자전거로 오르다니. 남들 하는 건 뭐든 다 해보고 싶어 하는 나지만 저건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오는 포장도로는 아마 산책 같은 수준이 아니었을까.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나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사진 6. 저 멀리 연기를 뿜고 있는 분화구가 보이고, 화산 투어 차량이 내려오고 있다.

사진 7. 곤돌라에 내려 조그만 언덕을 오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곤돌라에서 내리니 연기를 뿜는 에트나 화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다. 그리고 시원하다 못해서 이제 쌀쌀하기까지 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여기서 다시 화산 투어 전용 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 역시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발 2500m에 서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미 많이 올라왔지만, 더 높이 올라가 보고 싶었다. 특별히 입산을 금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어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트래킹이라 운동화를 신지 않은 일행들도 있어서 장시간 걷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또 다른 곳을 가기로 했기 때문에 뒤편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목적지로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서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언제라도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활화산의 분화구 아래에 있는데도 무섭기는커녕 처음 보는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서 우리는 어린아이마냥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처음부터 에트나 화산 트래킹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분화구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끝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했다. 비싸더라도 투어 버스를 탔어야 했다는 후회는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를 보며 더욱 커졌다. 이런 압도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매표소에 섰을 때는 그저 60유로가 너무 비싸게 느껴졌었다. 밥을 끊고, 집까지 걸어가더라도 버스를 탔어야 했다. 그만큼 에트나 화산은 압도적이었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고 외롭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하지만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여의치가 않았다. 바닥은 모래알 같은 화산재가 깔려 있어서 걷는 것이 힘들었다. 신발 안으로 화산재가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잡초도 자라지 않는 활화산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정말 많았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데, 입을 벌려서 크게 숨을 쉬려고 하면 입안으로 벌레가 들어왔다. 모기떼처럼 날아다니는 벌레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사진을 찍고, 경치를 감상하느라 잠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팔과 다리에 달라붙어 살갗을 간지럽혔다. 벌레가 간지럽힌다는 것은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느낌이 아니어서 사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진 8.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는 고지대에서 자전거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대단한 사람들

사진 9. 정상까지 가는 차를 차려면 60유로나 내야 하지만, 차를 타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사진 10. 스키장이 있었던 때에 사용한 리프트가 화산 폭발로 고장 난 채 시커멓게 서 있고, 그 너머로 이오니아 해가 보인다.

사진 11.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벌레들이 자꾸 달려 들어서 입을 벌리고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산 아래는 온 세상을 태워버릴 것 같은 태양이 작열하고 있는데, 산 위는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미리 트래킹 준비를 해 온 사람들은 다들 긴 옷을 입고 있었다. 멋모르고 터벅터벅 걸어 올라온 우리는 모두 짧은 반바지에 발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산 아래는 한여름인데 산 위는 한겨울 같았다. 시칠리아는 에트나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고 산 아래까지 내려간 후 그대로 해변으로 달려가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을 가진 시칠리아에는 여름과 겨울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여름이 너무 더워 산 위로 올라왔는데, 이제는 너무 추워서 다시 여름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려가면 다시 산 위가 그리워지겠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일단은 내려가야 했다. 바람이 너무 찼다.


정상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야말로 춥고 배고파서 다시 곤돌라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는 시칠리아 최고의 휴양도시라는 타오르미나(Taormina)이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작은 천국이라며 타오르미나를 극찬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모파상 같은 18세기 유럽의 대문호들과 유럽 각지의 귀족들도 이탈리아 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항상 타오르미나를 찾았단다. 그리고 뤽 베송 감독이 영화’그랑블루’를 촬영했던 바다가 바로 그곳에 있다고 했다. 허기에 쫓겨 서둘러 차를 몰고 출발했다. 


에트나 화산에서 타오르미나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걸렸다. 유료 고속도로를 통해서 가야 했는데, 도로비는 1유로였다. 덕분에 시원하게 뻗은 4차선 도로를 신나게 달려 순식간에 타오르미나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서쪽 공영 주차 타워였다. 도시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쭉한 모양인데, 시내로는 자동차가가 진입할 수 없었다. 도시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서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길이 아예 없었다. 도시를 방문하는 모든 차량은 이곳에 주차 타워에 차를 두고 걸어가야 했다. 물론 동쪽에서는 자동차 접근이 가능하긴 했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도로는 아니었다. 타오르미나는 괴테의 말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작은 천국이었다.


사진 12. 타오르미나 움베르토거리의 서쪽 입구.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사진 13. 보행자들의 천국 타오르미나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 어디든 참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여행의 낭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정확하게 위치를 안내해 준다. 덕분에 운전을 하며 표지판을 읽거나 내가 어디쯤 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스마트폰 지도는 낯선 도시를 걸을 때도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기보다는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했다. 길을 잃을 염려가 사라지자 여행이 주는 설렘도 줄어드는 것 같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가격의 숙소를 내부 사진까지 미리 보고 예약을 할 수 있다. 덕분에 저 숙소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지, 나의 협상력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게 되었다. 고생하려고 여행을 떠났는데 너무 편하게 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렌터카에 앉아 운전을 하며 계속 맴돌았다.


그런 면에서도 타오르미나는 참 매력적인 도시였다. 경적도 매연도 없는 곳에서 실컷 걸을 수 있었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움베르토 거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골목들이 두 사람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큼 좁았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는 저마다 개성 있는 식당과 카페가 즐비했다. 그리고 같은 비율로 갤러리와 공방이 있었다. 색색의 지붕과 베란다를 수놓는 화분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마치 클림트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두오모를 지나 도시의 중심인 대성당 앞 4월 9일 광장에 서자 타박타박 걷는 타오르미나 도심 여행이 최고조에 달했다.


사진 14. 비탈진 언덕을 따라 이어진 좁은 골목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 15. 타오르미나의 상징인 얼굴 모양 화분들

사진 16. 상점 위로 예쁘게 꾸며놓은 베란다들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17. 좁은 골목마다 갤러리, 공방, 카페가 있어서 타오르미나의 매력을 한층 빛나게 해준다.

사진 18. 걷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타오르미나의 여유


타오르미나는 외세의 잦은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절벽 위를 깎아 만든 도시다. 멀리서 바라보면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앙 광장에 서면 공중 정원에 서 있는 듯했다. 그리스 인들이 처음 도시를 만들었던 그 모습을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해가 지면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광장을 산책하는 모파상과 커피를 마시는 괴테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변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된다. 스토리 텔링을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 위에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다채롭게 펼쳐진다. 경주만 해도 그렇다. 박혁거세 신화가 있고, 무영탑 이야기가 있으며 이를 모티브로 한 소설과 영화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는 천 년을 이어온 왕릉이 얼마나 로맨틱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다시 경주를 찾게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변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도 역설적이지만 거대한 변화다. 요즘은 세상과 함께 매 순간 변화해 나가는 것이 보수적인 태도가 되고,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힘껏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외려 진보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과거를 단절시키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전주는 날이 갈수록 과거의 그 기품을 빠르게 잃어 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전주를 찾는 이유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기 위함일 텐데 현대적인 세련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스럽다. 반면에 경주는 벌써 오래전에 반월성 해자 복원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건물 복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반월성 해자라도 무사히 복원이 완료되면 경주는 역사적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콘텐츠 개발이라는 모든 관광 도시의 과제를 두 도시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어느 도시가 더 멋진 스토리 텔러가 될까. 두 도시 모두 한국의 격조와 기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4월 9일 광장 뒤편으로는 ‘그랑블루’에서 주인공 자크와 엔조가 우정을 나누었던 해변이 드넓은 이오니아 해를 곁에 두고 반짝였다. 저 멀리 보이는 에트나 화산은 아침에 느꼈던 희열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18세기 유럽의 대문호들이 왜 그렇게 이곳을 추앙했는지 단번에 깨닫게 해 주는 장소였다. 실제로 이 광장에는 괴테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Wunderbar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대문호이거나 혹은 대문호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자신의 예산이 기대 이상으로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 화려한 명성 때문인지 다른 카페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쌌다.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거나 에어컨을 시원하게 팡팡 틀어주는 것도 아니어서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사진 19. 타오르미나 대성당 앞 광장에 서면 에트나 화산과 이오니아 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영화 ‘그랑블루’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 20. 타오르미나 대성당 앞 광장

사진 21. 괴테를 포함한 수많은 대문호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Wunderbar


그나저나 아무리 멋지고 매력이 철철 넘치더라도 시칠리아의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습도가 낮아서 우리나라처럼 사우나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열하는 태양은 전기 오븐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햇볕에 나가면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타오르미나의 동쪽 끝에 도착했다. 타오르미나에 오기 전부터 어느 여행 블로거를 통해서 이곳에 이탈리아 최고 중 하나라고 부를 만한 젤라또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젤라또를 많이 먹어 봤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 센텀시티에서 먹었던 프렌차이즈 젤라또가 제일 맛있었다. 사실 젤라또 뿐만 아니라 유명하다는 곳에서 먹었던 유명한 음식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먹던 그것보다 못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하다.


가게 외관은 특별할 것 없는, 오히려 흔한 프렌차이즈 젤라또 가게 같았다. 심지어 가게 이름도 뭔가 못 미더운 냄새가 술술 풍기는 ‘젤라또마니아(Gelatomania)’다. 사람도 가게도 번지르르한 외양 보다는 알찬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한 편견이 먼저 생겼다. 각자 젤라또를 하나씩 골랐다. 테이블도 없는 가게라 길가에 엉거주춤 서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거 맛이 기가 막혔다. ‘기가 막히다’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알았다. 먼저 한 숟가락 떠먹은 일행이 ‘맛있다’는 그 말을 못하고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얼른 먹어보라는 손짓만 허공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피식 웃으며 나도 한 숟가락 떠먹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문장으로 백번 써봐야 내 능력으로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 같이 표현할 수 없으니, 그냥 누군가 타오르미나에 간다면 꼭 한 번 먹어보라고 감히 가게 이름을 밝히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사진 22. 우리 일행 모두를 열광하게 했던 젤라또 가게

사진 23. 너무 맛있어서 푼수 같지만 꼭 소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젤라또와 그라니따


젤라또 종이컵을 바닥까지 핥고, 숟가락에 묻은 한 방울까지 먹은 다음에 타오르미나의 자랑 그리스 원형 극장으로 향했다. 터키, 아테네 등에서 원형 극장은 몇 번이나 봤었지만, 타오르미나의 원형 극장은 지금까지 본 극장과는 달랐다. 사실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10유로) 조금 망설였었다. 하지만 타오르미나에는 이곳을 제외하면 입장료를 내는 유적지도 없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눈물을 머금고 들어갔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극장은 보존 상태가 워낙 좋아서 지금도 공연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갔던 날은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 예정되어 있었다. 저녁 늦게 시작되는 공연이라 일정이 맞지 않아서 공연은 포기하고 입장권만 사서 들어갔다. 극장에 들어가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단연코 지금까지 봤던 원형 극장 중에서 최고라고 할 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객석에 앉으면 무대 뒤편으로 이오니아 해와 에트나 화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풍경을 앞에 두고 오페라 공연을 본다면 얼마나 멋질까. 일정을 모두 바꾸고 오페라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타오르미나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이 극장에 앉아서 여유롭게 오페라를 보고 싶다. 시칠리아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사진 24. 그리스 원형 극장의 환상적인 전경

사진 25. 그리스 원형 극장은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지금도 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스 원형 극장 역시 천장이 없는 노천이라 오래 앉아 있는 것은 힘들었다. 내가 마시멜로(marshmallow)였다면 이대로 녹아서 저 무대 앞까지 흘러갔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생각나는 것은 조금 전에 먹었던 그 젤라또 밖에 없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지만 젤라또 때문에 다른 생각은 다 묻혀 버렸다. 걸음을 재촉하여 그 가게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젤라또가 아니라 시칠리아 전통 얼음과자인 그라니따(granita)를 먹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팥빙수 같은 음식인데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것이 아니라 생과일주스를 얼린 다음 셔벗(sherbet) 같이 얼음을 곱게 갈아서 먹는 디저트다. 옛날에는 에트나 화산의 얼음으로 그라니따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역시 이번에도 그 가게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미 젤라또 때문에 충분히 놀랐었기에 이번에는 놀란 표정 대신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역시 더 설명해서 무엇하겠나. 그저 그 가게에서 파는 모든 젤라또와 그라니따를 다 먹어보지 못하고 타오르미나를 떠나 온 것이 후회될 뿐이다. 이제 ‘이탈리아 음식은 모두 맛있다.’라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밉상이더라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서 해가 지기 전에 타오르미나를 떠나 카타니아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늘 가능한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에 마지막 날 저녁 식사는 정통 이탈리아 식당에서 정찬을 먹어 보기로 했다. 유명한 가게라고 해서 조금 긴장하고 메뉴판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시칠리아에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이탈리아 물가가 생각보다 저렴했다. 식당은 편차가 심해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슈퍼마켓에 들어가면 물가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나는 대체로 생수 가격이나 맥주 가격을 보며 물가를 가늠해 보는데 이탈리아는 그리스나 몰타보다 확실히 저렴했다.


기합을 잔뜩 넣고 왔지만 차마 30유로짜리 코스요리는 손이 떨려서 먹지 못했다. 우리는 여행자답게 메인 요리만 주문했다. 대신 허전하게 비어서 가로등을 반사하고 있던 와인 잔에 붉은 와인을 가득 담는 호사를 부렸다. 시칠리아의 명물 황새치 구이와 해산물 파스타, 송아지 스테이크 등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계속 맛있다는 말을 하면 그 단어가 가진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서 걱정되지만 ‘참 맛있었다’. 


특히, 파스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파스타가 세계 최고라는 이야기를 이탈리아 친구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서 확인차 주문한 메뉴였다. 그리고 은근히 맛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어디 둘 데도 없이 깨끗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파스타라는 것은 정말 간단한 요리다. 누군가 들으면 속상하겠지만, 파스타는 인스턴트 라면 끓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먹는 것이 파스타이기도 하다. 제일 값싸게 빨리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석하지만, 우리나라 라면보다 맛도 없다.


사진 26.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풀린 파스타 한 접시


그런데 유명한 이탈리아 전통 음식점에서 먹은 파스타는 지금까지 내가 먹은 음식이 파스타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만들길래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어머니께서 한식 요리사이기 때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서양 요리와 그들의 레시피를 보며 조금 무시했었다. 하지만 이날 나의 편견은 깨졌고, 나는 조금 겸손해졌다. 가장 간단한 레시피의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이날 먹은 파스타는 정말 최고였다.


3박 4일간의 시칠리아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이케아(IKEA) 카타니아 점에서 시작했다. 일행 중에 이케아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있기도 했고, 세계 어디든 이케아의 식당이 대체로 가격 대비 훌륭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북유럽 여행 중 여차하면 이케아에 식사를 해결하러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아침 일찍 이케아 매장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월요일 아침인데 가족 단위로 쇼핑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방학 기간일 테지만(이탈리아는 여름 방학이 3개월이다.) 어른들은 출근을 하지 않나? 모두 개인 사업자들인가? 쇼핑이 목적이 아닌 우리 일행은 푹신한 소파와 침대에 앉아서 ‘월요일 오전에 이케아에서 가족 단위로 쇼핑하는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토론을 하며 식당이 오픈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케아 식당은 정말로 가격과 비교하면 양과 질이 좋았다.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양과 질은 그것보다 ‘쪼끔’ 더 좋았다는 말이다. 실망도 하지 않지만,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사진 27. 이케아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식당이 되어주었다.


이제 지난 3일 동안 내 가슴 속에 매달려 있던 돌덩이를 떼어내기 위해 렌터카를 몰았다. 렌터카를 처음 받았던 날 운전 미숙으로 앞범퍼에 아기 손바닥만 한 흠집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를 내놓으라고 할까. 밤새 인터넷을 뒤져 비슷한 상황을 찾아보았지만, 나라마다, 사무실마다 처리 방식이 달라서 글을 하나 읽을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나마 공통된 위안은 렌트비가 저렴하다고 무조건 싼 회사보다는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크고 유명한 회사가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유연하게 처리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격이 가장 비싸고 가장 큰 회사에서 렌트를 했으니 그 점은 안심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사무실은 철문을 내리고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차량 반납 일자를 잘못 알고 있나? 우리가 시간을 잘못 알고 있나? 별생각이 다 들었는데 알고 보니 시에스타(낮잠시간)이었다. 공통으로 정해진 시에스타 시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렌터카 사무실은 오후 1시부터 3시 30분까지 쉬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렌터카를 반납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결국 차에 앉은 채로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뭔가 불합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후에 이렇게 잠깐 쉬었다가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그저 부럽기만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일 것이다. 낮잠이 얼마나 업무 효율을 높이는지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근면·성실을 추구하는 직장에서 낮잠이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짜증과 부러움을 동시에 쏟아내며 렌터카 사무실을 쳐다보고 있는데 정확하게 3시 30분이 되니까 직원들이 나타났다. 시간 개념도 느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어쨌든 간에 지금은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치 형법이라도 어긴 죄인 마냥 무거운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렌터카 사무실이 아니라 경찰서에 가는 기분이었다.


인자하게 생긴 사무실 아저씨는 범퍼의 상처를 보더니 “이건 새로운 거네?”라며 냉큼 체크를 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큰 소리로 “yes!” 대답을 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사진을 찍고 한참을 하더니 청구서에 180유로가 찍혀 나왔다. 20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이었다. 기본적인 보험은 들었지만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 같았다. 약관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청구금액에 상상을 초월하지는 않아서 그제야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사실 걱정했던 부분이 차량 수리 기간 동안 렌트카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거 보통 열흘은 필요해.”라고 하면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내게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상냥한 아주머니는 다행히도 수리 비용 외에 다른 것은 청구하지 않았다. 어쩌면 수리 비용 안에 이미 다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신 승리가 필요했다. 1,800유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오히려 일행들도 나를 위로해 줬다. 가능하면 렌터카 같은 것은 타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지하철 타는 돈이 아까워서 두 시간씩 걸어 다녔던 주제에 렌터카라는 호사를 부렸으니 그에 합당한 처분인 것 같았다. 


사진 28. 카타니아 항구에서 버스를 타고 포짤로 항구로 이동해서 페리를 탔다.


우리는 다시 카타니아 항구에서 포짤로 행 버스를 탔다. 카타니아 버스 터미널도 있는데 굳이 항구에서 버스를 타는 이유는 뭘까 싶었다. 그래도 배를 타는 기분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인가? 티켓에 찍혀있는 ‘카타니아 행’이란 것을 이렇게라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항구와 어울리지 않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배를 타고 포짤로 항구로 향했다. 나를 향해 작별 인사를 보내는 시칠리아의 석양이 참 예뻤다. 세상 어디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시칠리아는 다음에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렌터카 대신 긴 시간 천천히 느린 기차와 느린 버스를 타고 시칠리아를 천천히 꼭꼭 씹어 음미하고 싶다. 이런 멋진 기억을 선사해 준 시칠리아에 감사하다.


‘다음에 꼭 다시 올게. 시칠리아!’


사진 29. 카타니아 세인트 아가사 성당 앞 광장이 야경

사진 30.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시내 중심가의 카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사진 31. 카타니아 세인트 아가사 성당 앞 분수 아래로 흐르는 물은 에트나 화산에서부터 출발해서 바다로 향하는 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