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박타박 아홉걸음

타박타박 세계일주 13 ::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이미 아테네 사람들에게 졌다. 본문

여행

타박타박 세계일주 13 ::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이미 아테네 사람들에게 졌다.

한성은 2016. 7. 28. 00:00

새로운 바람이 내게로 불어와

저 먼 산 뒤로 넘어가는 구름 따라 가겠어

바람의 향기에 어느새 난 취해버렸고

애써 지난 슬픈 날 외로움 날려버리고 잊어버리고


멈춰진 낡은 턴테이블

흩어진 기억의 노래

다시 부르자 희망의 불꽃 타오르며

나 지금 혼자 걷지만 나 지금 혼자 울지만

새로운 바람에 내 마음 실어 보내요


- 킹스턴 루디스카, '걷고 싶은 거리' 노랫말 중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타박타박 걷고 또 걷고 싶은 아테네


아테네는 참 걷기 좋은 곳이고, 걷고 싶은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어디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생긴다. 한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로 들어가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렌지 나무 가로수 아래로 걸으면 향긋한 오렌지 향이 거리의 매연을 지워준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가 풍기는 생경함은 여행자의 발걸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어느 교과서에서 본 듯한 오래된 건축물들은 처음 마주하고 있어도 낯설지가 않다. '그리스 신화'라는  단어는 너무 많이 들어 봐서 마치 내가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지금까지 '그리스 신화'는 나에게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자주 가던 놀이공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아 놀이공원과 함께 늙어버린 경비원만 매표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잊힌 꿈으로만 존재했었다. 그런데 내가 걷고 있는 이곳 아테네의 거리에는 바로 그 그리스 신화가 250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수많은 사람의 찬사 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었다. 학부생 시절 그리스 신화 이후로 인류의 문학사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말을 문학 비평 서적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박물관 속의 유물들이 살아서 걸어 다니는 소리라며 무시했었다. 그런데 아테네 거리에 서서 저 멀리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에 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제 빛깔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인간과 신들이 함께 공존하던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Ολυμπιακό Στάδιο)


숙소를 나와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걷다 보니 거대한 석조 경기장이 길가에 있었다.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Ολυμπιακό Στάδιο)이었다. 숙소를 나서며 생각했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라니.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말발굽처럼 생긴 경기장이라 한쪽 벽면이 트여 있어서 밖에서 얼마든지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 육상 트랙을 밟아보고 대리석으로 된 관중석에 앉아 당시의 환호를 느껴보고 싶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아테네 고대 유적 통합 입장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따로 사야 한다. 참고로 일요일에는 무료 개방이다. 단, 일요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린단다. 평일 아침이라 사람이 없기도 해서 나는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사용된 시상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경기 중 트랙 안으로 관중이 난입하여 선수를 방해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던 그 트랙도 그대로였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곳을 직접 걸어보다니, 믿기지 않았다. 관중석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경기장이 마치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았다. 관중석 중 경기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가운데에는 귀족들이 앉던 자리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 관중석에는 등받이가 없는데 귀족석에는 등받이가 있어서 편했다. 귀족석 바로 뒤에 앉은 사람은 아마 시야가 가려서 답답했을 것 같다. 앞사람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차별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때는 신분이 차별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돈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밖에 달라진 것이 없다.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가 시상대에 올라서 보고 선수들이 입장했던 통로를 걷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한다. 


경기장 내부에는 올림픽 역사관이 있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모든 대회 포스터와 실제로 사용되었던 성화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와 성화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괜히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했다. 평소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해서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말을 하고 다니며 잘난 척을 했었다. '88 서울 올림픽'이 전두환 군사 정권 아래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행사였는지,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당시 강남 지역에 살던 판자촌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강제 이주시켰는지, 왜 우리가 지금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야 하는지, 지금의 성남시가 어떤 아픈 역사를 가졌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국가 대항전 축구 경기에서 이유 없이 우리나라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이곳 올림픽 역사관에서도 서울 올림픽의 공식 포스터를 카메라에 담으며 옆에 있던 지루한 관리인에게 여기가 우리나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쨌거나 외국에서 지내다가 내가 살던 나라의 흔적을 발견하면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바른 것인지 모르겠다.


88 서울올림픽의 포스터와 성화도 근대 올림픽 역사관에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올림픽 경기장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올림픽 행사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경기장 밖에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이 화장실이 유료이다. 터키에서도 그랬고 그리스도 그렇고 화장실 사용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공중 화장실은 대부분 이용료를 내야 한다. 그나마도 여기저기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곤란할 때가 많다. 그런데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터키와 그리스를 한 달 넘게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그냥 그 돈이 너무 아깝다. 화장실을 관리하는 사람의 임금을 그 돈으로 지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돈은 내 기준으로 명백하게 '아낄 수 있는 예산'에 속했다. 그래서 터키에 있는 동안 유료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갔다. 숙소에 있거나 식당에 들어가거나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카페에 들어갈 때 외에는 무조건 참았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참 대견하거나 지독한 것 같다.


어쨌든 터키에서는 화장실 이용에 1리라 정도였는데, 그리스로 오니 화장실 이용이 50유로센트다. 거의 두 배로 오른 것이다. 화장실 표지판을 보고 새 신발을 신은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달려갔다가, 산타클로스의 비밀을 알게 된 아이 같은 참담한 표정을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당연히 참았다. 밥 먹을 때까지만 참으면 되니까 그냥 가자 싶었다. 그리고 신호등을 건넜는데 화장실이 또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무료 화장실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낙서들이 있기는 했지만 내 눈에는 '여기는 무료 화장실이에요.'라고 쓰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화장실 안은 이곳이 왜 무료인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시설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행위의 목적을 달성하고 행복한 결말을 끌어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위생에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인지 좌변기임에도 불구하고 걸터앉을 수 있는 좌석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는 유료 화장실(위)과 관리인은 없지만 불편함도 없었던 무료 화장실(아래)


근대 올림픽 경기장을 뒤로하고 올림포스 산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제우스 신전이 나온다. 사진으로 보던 제우스 신전과 똑같았다. 인도에서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아주 비싼 입장료를 내고 긴 줄을 기다려 타지마할을 마주 보고 섰던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우와! 인터넷에서 본 거랑 똑같네! 근데 사진 보다는 안 예쁘네.'였다. 여행을 다니는 데 있어서 타지마할은 나에게 원효대사의 해골 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 관광지를 의도적으로 피해서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로는 유명 관광지에 대한 기댓값이 높지도 않고 여행 계획을 짤 때 우선순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제우스 신전도 딱 그럴 것 같았다. 다 없어지고 쓰러져 초라한 기둥만 멀뚱멀뚱 서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명색이 제우스 신전인데 파르테논 신전보다 위치도 규모도 작고 초라하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마주한 제우스 신전은 몇 개 없는 그 기둥만으로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조용한 숲 속에 너른 터를 잡고 앉아 있는 제우스 신전은 안으로 들어서면 그 규모 때문에 보자마자 탄성이 터졌다. '저 높은 탑을 쌓으려면 기중기가 있어야 할 텐데 대체 어떻게 쌓았지?'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야 기중기가 처음 등장했었다. 기원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몸집도 작았을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저 높은 수직 기둥을 쌓았을까. 블록 형식으로 쌓아 올린 기둥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만도 아주 힘들었을 것 같다. 심지어 블록 형식으로 쌓아 올렸다는 것도 옆에 쓰러져 있는 기둥을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만큼 정교했다. 지붕을 받쳤던 부분의 부조는 대체 어떻게 저토록 정교하게 조각을 했을까. 역사나 건축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단지 그 규모만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2차원 평면인 사진은 크기를 표현하지 못한다. 제우스 신전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내가 직접 그 자리에 서서 한없이 높게 솟은 그 기둥을 보고서야 감탄이 쏟아졌다. 기원전의 건축물이란 사실을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제우스 신전 앞에 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지진 때문에 쓰러졌다는 기둥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블록처럼 쌓아 올렸다는 것조차 몰랐을 정도로 정교했던 제우스 신전의 기둥


제우스 신전을 나와 길을 건너면 아크로폴리스 입구 반대편에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유물 대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기 전에 박물관을 먼저 갔다가 올라가기로 했다. 박물관은 아테네 통합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따로 입장권을 사야 했다. 통합 입장권이라고 하면 아테네에 있는 모든 유적지와 박물관이 포함될 것 같지만 실제로 통합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아테네의 경제가 관광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하지만 조금 얄미웠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곳곳에 도사리는 비싼 입장료는 참으로 곤란하고 속상한 문제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자니 입장료가 너무 비싸고, 막상 들어갔다가 후회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과 놓치면 후회할 것이란 말들의 홍수 속에서 늘 갈등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새로 지은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그리스에 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박물관 자체만으로 충분히 훌륭했던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2007년에 새로 지어진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유물을 보지 않더라도 박물관 그 자체만으로 훌륭했다. 자연 채광을 충분히 활용한 밝고 환한 전시관은 기존에 늘 보던 낮은 조도의 어두운 박물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유물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시설이나 레고 블록을 활용한 전시품들은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간과 동선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석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서양 고대사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더라도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누구나 쉽게 기원전 신화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박물관 옥외 테라스에 있는 레스토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어떤 박물관을 가더라도 그곳의 카페나 식당이 기억에 남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어느 유명 식당과 비교하더라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우아했다. 박물관 외부에서 바라보아도 새하얀 테라스가 참 예뻤고, 테이블에 앉아 박물관 밖을 바라보더라도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며 차와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실제로 내가 아테네에 있을 때 그리스의 국빈들이 방문하여 이곳에서 식사를 했었다. 높으신 분들의 안목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것 때문에 나 같은 일반인의 통행이 통제되어 대중교통을 탈 수도 없고, 짧은 거리를 돌아서 가야 했고, 거리 풍경을 찍으려 해도 경비원이 달려와서 오늘은 안 된다며 제지를 했지만 말이다.


그리스 국빈도 이곳에서 만찬 행사를 가졌다고 하는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부설 식당

 

누가 뭐래도 아테네의 주인공은 아크로폴리스다.


신들의 신 제우스가 들으면 무척 속이 상하겠지만, 누가 뭐래도 아테네의 주인공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지은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의 건축물이다. 현재는 신전 외부를 둘러싼 기둥만 겨우 남아 있지만, 그동안 온갖 전쟁의 소용돌이 속을 헤쳐온 아테네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버티고 있어 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신전을 보기 위해 해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아테네를 방문하는지 생각해 보면 아테네 시민들도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낮에 내리쬐는 지중해의 햇볕은 그것만으로도 눈이 부셨지만, 그 찬란한 햇빛을 받아 안은 하얀 대리석 기둥은 마치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불레의 문(Boule Gate)을 통과해 프로필레아(Propylea)까지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올라가는 계단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았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부석사 경내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부석사 범종각 아래를 통과해서 무량수전으로 이어진다. 조심조심 계단을 밟다가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이곳은 속세(俗世)가 아니라 정토(淨土)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드넓은 평지에 우측의 파르테논 신전과 좌측의 에렉티온 신전(Erecthion Temple)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드디어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부석사 범종각 아래를 지나는 듯 했던 불레의 문(Boule Gate). 여기를 지나면 아크로폴리스 정상이다.


복원 공사가 한창인 파르테논 신전


기둥과 벽 사이로 하얀 얼룩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복원 공사가 진행된 곳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발굴된 중요한 유적들과 조각상들은 모두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10년 전에 아테네를 방문한 사람도, 20년 전에 아테네를 방문한 사람도 파르테논 신전은 복원 공사 중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 공사는 1975년에 시작했단다. 공사가 언제 마무리될 것인가에 대한 안내는 없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복원 공사를 해 왔는지에 대한 안내는 자세하게 되어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뿐만 아니라 아크로폴리스 전체를 복원하는 중이었다. 옆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20세기 초에 복원 공사를 한 번 완료했는데, 그 과정과 결과가 너무 엉망이어서 국가적 사업으로 대공사를 새롭게 하는 중이라고 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여기가 완전히 복원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정확한 고증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비록 내가 그때 그 시간에 다시 아테네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다음 세대 인류를 위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아크로폴리스의 복원 사업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숭례문과 경복궁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 국보 1호가 한 개인에 의해 전소한 것도 믿을 수가 없고, 복원 과정과 복원 결과도 엉망인 숭례문은 지금도 여전히 국보 1호다. 현판은 갈라지고, 단청은 떨어져 나가고, 기둥이 돼야 했을 금강송은 대목수가 빼돌렸단다. 아테네는 그들의 조상이 남긴 과거의 찬란한 유산 덕분에 도시 전체, 나아가 그리스 전체의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 상황은 처참하기까지 하니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다. 그래도 현재 진행 중인 경복궁 복원 공사는 1990년대에 시작하여 최종 완료 시점을 2030년으로 잡고 있다. 경복궁만큼은 복원 공사가 잘 마무리되어서 과거 찬란했던 우리의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크로폴리스의 전망대에 서면 멀리 지중해와 함께 아테네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테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 생각, 저 생각을 이어가다가 통합 입장권으로 갈 수 있는 고대 아고라(The Ancient Agora)와 로만 아고라(The Roman Agora), 하드리안의 도서관(Hadrian’s Library)으로 향했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와 아테네의 구도심이자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에너지가 넘치는 모나스티라키(Monastiraki)의 풍물 시장을 지나면 이들 유적을 볼 수 있다. 비록 쓸쓸하게 남아 있는 기둥 몇 개가 전부지만, 말로만 듣던 아테네의 아고라에 내가 섰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다만, 이들 문화재는 입장 마감 시간이 오후 3시이다. 동선을 짤 때 시간을 고려하지 않으면 헛걸음을 하게 된다. 그나저나 오후 3시에 퇴근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이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 구호가 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이들의 삶이 배가 아프도록 부러웠다.


통합 입장권으로 관람할 수 있는 로만 아고라와 고대 아고라 그리고 하드리안의 도서관


아테네 시내에서 T4 트램을 타고 서쪽 끝까지 가면 작은 해변이 나온다. 도시 끝까지 달려간 트램은 바다에 이르러 멋진 해변을 곁에 두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트램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는 모래 해변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원래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고민하지 않고 바티스(Batis) 역에 내렸다. 트램 정거장은 해변과 맞닿아 있었다. 마치 정동진역 같았다. 하지만 정동진은 서울이 아니지만, 여기는 그리스 최대의 도시 아테네다. 부산 해운대나 광안리를 떠올려보면 이곳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나 멋지게도 트램이 느릿느릿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지나다녔다. 솔직히 나는 아크로폴리스보다 이곳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면서는 ‘얼마나 멋질까?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환상적이겠지?’하는 생각을 하고 올라갔었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는 당연히 멋져야 했다. 내가 아테네에 온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그곳은 딱 그 기대만큼 멋있었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환상적인 광경은 감동에 인색하고 싶은 허세 가득한 배낭 여행자의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이 가진 일상의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해변


T4 트램을 타고 동쪽 끝으로 달려가면 해변과 맞닿은 바티스(BATIS) 역이 나온다.


해는 언덕 너머로 몸을 숨기기 직전이었고, 하늘은 곧 타오를 듯이 붉었다. 사람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넘어가는 해를 즐기고 있었고,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여전히 바닷물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삶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직장생활을 할 때, 나만의 저녁을 간절히 바랐다. 하루 중 단 한 시간 만이라도 나를 위해 오롯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교는 늘 바빴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퇴근 시간에 퇴근을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나는 그 일부에 속하지 못했다. 정시 퇴근은 비난받는 행위였다. 비정규직 교사로 5년을 지내면서 실제로 퇴근 시간에 퇴근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냥 오후 6시 즈음을 퇴근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뿐, 그렇다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은커녕 밤도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저녁이 아니라 무려 오후를 즐기며 살고 있었다. 길을 잃어 우연히 찾아갔던 아테네 복합 문화센터 (Culture Center Stavros Niarchos Foundation)에는 야외 수영장, 축구장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고, 이들의 부모들은 함께 운동을 하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나를 속이려고 일부러 다 같이 모여서 행복한 척, 여유로운 척을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러웠다.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리스의 경제 문제가 과도한 복지 제도 때문이라며, 복지 제도가 너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게을러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스 경제가 어려운데 노천카페에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비난을 퍼붓는 기사를 며칠 전에 읽었다. 과연 그럴까.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과 오후를 함께하며 이들과 같은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


나의 삶이 여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의 삶이 여유로워져야 한다. 경제적 풍요보다 시간적 풍요가 전제되어야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가게들이 모두 일찍 문을 닫아서 오후가 되면 식료품 사는 것조차 불편해지더라도,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문제였다. 집 근처 외진 곳에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기꾼이라느니, 책임감이 없다느니, 불평한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들어간 가게가 자정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해서 ‘저 가게는 장사할 생각이 없나 보다.’고 비웃은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주말 내내 물류센터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물류센터는 멈추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제는 알고 있다. 새벽 2시에 전화 한 통이면 갓 튀긴 치킨을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해 주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밤 12시에 하교를 하는 학생들을 독려하여 잠을 더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학문을 향한 열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제는 알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참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나의 선택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며, 우리나라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이곳 아테네에서 나는 사람답게 사는 삶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떠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영원히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나는 분명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물론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통장 잔고가 줄어들고 있고,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삼십 대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괜찮다.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놓아야 할 것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아크로폴리스의 도리아 양식 석조 기둥 건축물들이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비하면 밋밋하여 깊은 맛이 없다. 만약 바꾸자고 한다면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일상의 여유만큼은 내 큰 배낭에 훔쳐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내가 남은 삶을 보냈으면 좋겠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퇴근 후에 그 아이가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하지 않으니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런데 이미 졌다.


그동안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볼 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