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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12 ::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아테네에서 거리를 걷다 본문

여행

타박타박 세계일주 12 ::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아테네에서 거리를 걷다

한성은 2016. 7. 12. 06:53

그리 길지 않은 하루, 

쉽지 않게 잊으려 하던 그 순간,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그냥 한 번 돌아보며,

아무 일도 아닌 척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조금 씁쓸한.


내가 뭘 알겠어. 

내가 뭘 하겠어. 

슬프지 않아 그냥 아련할 뿐.

뭘, 괜찮아.


- 짙은, '괜찮아' 노랫말 중에서


앗! 비행기가 없다.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할 때에는 최소 4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합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이제 여행 전문가가 아닌가! 괜히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을 기다리며 의자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싫어서 이스탄불 시내에서 알차게 놀다가 공항으로 온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온갖 여유를 부리며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2시간 전이었다. 그런데 내가 타야할 비행기가 전광판에 없었다. 항공권을 받을 항공사 부스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 밤에도 그리스행 항공권을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날짜도 정확하고, 시간도 맞았다. 그런데 비행기가 없었다. 안내데스크에 달려가 물어보니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공항으로 가야한단다. '다른 공항이라니, 이스탄불에 공항이 두 개였나?' 그랬다. 이스탄불에는 국제공항이 두 개였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출발하여 터키 이스탄불로 올 때는 아타튀르크(Atatuerk International Airport, IST) 국제공항에 내렸었다. 그래서 그리스행 페가수스 항공사의 비행기도 당연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출발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페가수스 항공은 터키의 저가 항공사였고, 이스탄불에서 떠나는 유럽행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들은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이 아닌 사비하 괵첸 국제공항(Sabiha Gokcen International Airport, SAW)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내가 탈 비행기가 저가 항공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제 여행에 익숙해졌다고 우쭐하다니.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제야 비행기의 출발 날짜와 탑승 시간 옆에 적힌 사비하 공항의 영문 약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사진 1. 터키 이스탄불에는 국제공항이 두 개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공항을 뛰쳐 나와 택시 기사에게 사비하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었더니 1시간 이상 걸린단다.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해도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사비하 국제공항은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정반대편인 이스탄불의 가장 동쪽 끝에 있었다. 인천 국제공항과 김포 공항 정도의 거리였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는 공공 와이파이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급하게 뭔가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행 항공권을 예약한 여행사에 국제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항공권을 변경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It is impossible. Sorry." 미안하면 변경을 해주면 될텐데 미안하다는 말조차 얄밉게 들린다. 아무튼 적어도 72시간 전에 스케줄 변경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무리한 요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로밍한 전화기를 사용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들을 알게 되는 데까지 1시간이 걸렸다. 터키는 대부분의 유동 인구 밀집 지역에서 검문검색이 매우 까다롭다. 비행기 탑승객뿐만 아니라, 공항 내에 진입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검문검색을 하기 때문이었다. 공항 출입구를 통과하는 데만 20분씩 걸렸다.


한국에서부터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누누이 강조했었다. 유럽의 저가 항공사들은 주요 공항에서 취항하지 않고, 동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공항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꼭꼭 확인해야 한다고 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곳도 있어서 저렴한 비행기 표를 구하려다가 택시비가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 수많은 조언이 그제야 생각났다. 결국 이렇게 사달이 나야 깨닫는 것이다. 흔히 국제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고 한다. 아마 내가 4시간 전에 도착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내 탓이다.


공항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가장 싼 음료를 주문하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내가 타야할 비행기는 이미 저 멀리 다른 공항에서 떠나버렸다. 누군가 내 자리에 두 발을 쭉 뻗고 편하게 날아가고 있겠지. 그나저나 석 달 전에 예약한 그리스행 저가 항공권은 당일 발권으로 조건이 바뀌자 가격이 4배 이상 올라가 버렸다. 그마저도 저가 항공은 하루에 한 편만 운항했기 때문에 같은 비행기를 이용하려면 이스탄불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오늘 밤 예약해 둔 아테네 숙소도 사라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을 다시 샀다. 그 결과 배낭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피하려 했던, 낯선 나라의 공항에 자정이 넘어 도착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버스도 트램도 안 타고 내내 걸어 다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터키 전체 여행 경비와 맞먹는 경비를 지출하고 나니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애플 스토어를 구경하겠다고 온종일 이스탄불 시내를 헤집고 다녔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전리품처럼 빛나던 아이폰 액세서리도 빛을 잃어버렸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만에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첫 번째 순간이 그렇게 찾아왔다. 그러는 사이에 카페 주인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계속 인터넷을 하고 싶으면 추가 주문을 하라고 했다. 지쳐서 화낼 기운도 없었다.


사진 2. 이스탄불 최대의 쇼핑센터 'ZORLU CENTER'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공식 애플 스토어가 입점해 있다.


우여곡절 끝에 탄 비행기는 무심하게도 아무 일 없이 아테네 상공에 도착했다. 그리고 쓰린 내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아테네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 물가가 저렴한 터키였기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다면 훨씬 상황이 안 좋았을 거야.' 뭔가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안에 숨겨둔 소중한 친구 '아Q'를 불렀다. 겨우 이 정도로 사태를 수습했고, 나는 처음 계획대로 아테네에 잘 도착했으니 그것으로 된 거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 


다행히도 아테네의 대중교통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운행 중이었다. 예약해 둔 숙소의 호스트도 자정이면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아테네는 그 시간에도 전혀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공항버스는 아테네의 신타그마(Syntagma) 광장에 도착했다. 짙은 어둠이 내린 으슥한 광장을 예상했는데, 신타그마 광장에는 그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건물과 상점들도 모두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리스 사람들은 우리나라만큼 밤 시간을 매우 즐긴다고 했다. 그리고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la siesta)도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철저히 지킨다고 했다. 주택가의 작은 식당들은 저녁 영업시간이 밤 8시부터 인 곳도 있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지고 난 후에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새벽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었다.


사진 3. 아테네 국제공항은 새벽 2시까지 공항버스가 운행한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집주인인 아키스(Akis)는 그리스 사람답게 그 시간에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더 일찍 나가야 했는데, 내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나를 기다리느라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이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내 상황이 더 엉망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내가 자기 집에 오는 첫 번째 손님이라며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늦은 시간이라 배고플 것 같아 준비했다며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리스 음식도 내어주었다. 


음식이 반가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질척질척한 야채 볶음밥처럼 생긴 그 음식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맡아 보지 못한 향신료 맛이 가득했다. 낯선 이방인에게 그리스의 향기를 가득 전해주고 싶어하는 아키스의 마음이 느껴졌다. 맛이 어떠냐고 묻는 물음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대답하고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다만, 아키스의 마음만큼이나 향신료 맛도 깊고 진하여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은근하게 입안 가득 퍼지는 맛과 향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뭔가를 발효시킨 것 같은데 홍어처럼 톡 쏘는 것은 아니었고, 청국장 콩을 띄우다가 잘못해서 썩으면 날 것 같은 향이었다. 귀리 같은 것이 들어 있었지만, 죽처럼 질척질척하여 식감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질척질척한 덕분에 금방금방 삼킬 수 있었다. 온종일 굶어서 텅 빈 위 속으로 이름 모를 그 음식을 후다닥 밀어 넣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조용히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다. 그렇게 강렬하게 나는 그리스와 눈, 코, 입으로 만났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숙소는 알고보니 아테네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총각 선생님의 집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총각 선생님이었다고 소개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아키스는 외출을 했다. 고등학교 문학 교사라는 말에 궁금한 것들이 오백 가지쯤 있었지만, 아키스의 집에서 한동안 머물 예정이니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었다.


사진 4. 아테네에서 묵었던 고등학교 총각 문학 선생님의 집


사진 5. 집주인 아키스의 마음이 듬뿍 담긴 이름 모를 그리스 전통 음식


아테네는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하철역에도 유적이 발굴되어 보존 중이었고, 거리 곳곳에도, 빌딩 입구에도 유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지도가 없어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면 유서 깊은 유적들이 있었고, 정신없이 걷다 보면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이드 북을 통해 보던 유적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안내판에는 언제나 BC(기원전)와 AD(기원후)가 혼재되어 있었으니 단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저 돌과 저 기둥이, 저 통로와 저 성벽이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실감이 안 났다. 


사람들은 아크로폴리스(Acropolis of Athens)가 보이는 아레스의 언덕(Mars Hill)에서 밤바람을 쐬며 산책하러 다녔고, 파르테논 신전(Parthenonas)을 등 뒤에 두고 거리 공연을 즐겼다. 기원전에 지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Herodes Atticus odeum)은 해마다 여름이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했다. 내가 갔던 시기는 아쉽게도 6월이라 공연이 없었다. 하드리안의 도서관(Hadrian’s Library)과 고대 아고라(Archea Agora Athinon) 사이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천카페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음악과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아테네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나 우아하고 여유로워 보여 샘이 날 지경이었다.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방인의 눈에 비친 아테네는 우아하고 여유롭고 활기가 넘쳤다. 2천 년이 넘는 역사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고, 그들 조상의 빛나는 문화 유적을 탐방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테네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테네 시민들은 그들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유달리 강하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 한 것 같았다. 공원을 걷다 보면 거대한 제우스 신전의 기둥이 보이고, 신호등을 건너면 근대 올림픽 경기장이 웅대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전 세계 어느 도시와 견주어 부족함을 느낄까.


사진 6. 아테네에는 거리 곳곳, 빌딩 아래, 지하철 역에도 유적지가 발굴되어 보존 중이었다.


사진 7. 2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아테네의 모습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아테네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나는 거대한 유원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시티 투어 버스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녔다. 일반적으로 시티 투어 버스라고 하면 시에서 운영할 것 같은데, 아테네의 시티 투어 버스는 이것을 전문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여럿 진출하여 경쟁을 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마다 색깔도 다르고 노선도 조금씩 달랐다. 시티 투어 버스 정거장에서는 호객을 하는 영업 사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돈이 되는 사업은 뭐든 민영화를 하고 경쟁을 하는 것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부산에서는 늘 시에서 운영하는 시티 투어 버스를 보아오던 탓에 투어 버스 호객 행위는 조금 낯설었다. 요금이 비싸서 타 보지는 않았지만, 여유가 있었어도 내리쬐는 뙤약볕을 뚜껑 없는 차에 앉아 고스란히 맞고 있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테네는 정말 더웠다. 하긴 세상 어디든 여름은 덥다. 그리고 아테네의 중요한 관광지는 특별히 투어 버스를 타지 않아도 두 발로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다 보면 유명하다 싶은 곳은 모두 볼 수 있다.

사진 8. 아테네에는 세 종류의 시티 투어 버스가 정거장마다 호객을 하고 있다.


사진 9. 거대한 유원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테네의 다양한 투어 상품들


아테네가 거대한 유원지 같다는 느낌은 며칠 머물면서 더욱 강하게 들었는데, 낯선 여행자가 도심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데 불편함 없이 완벽하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었고, 좁은 골목골목마다 표지판도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고개를 들면 언제나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니 방향 감각도 항상 유지할 수 있어서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볼 일도 없었다. 그래서 아테네는 혼자 놀러 온 거대한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는 터키와 달리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사진을 찍자고 달려오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여행의 맛은 역시 사람과 섞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진이란 것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내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멋진 사진들이 넘쳐 난다. 나는 그저 내 두 눈에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오롯한 나만의 경험이었다. 그것은 누군가 대신 해 줄 수 없었다. 


사진 10. 거리 곳곳에 있는 표지판만 따라 다니면 어렵지 않게 아테네 시내를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말없이 아테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이국적인 거리의 풍경들은 모두 낯섦 그 자체였다. 거리의 가로수가 모두 오렌지 나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참 놀랐다. 나무에는 내 주먹만 한 오렌지가 수도 없이 매달려 있었고, 거리에도 바닥에 떨어진 오렌지가 가득했다. 은행나무 아래에 은행이 가득 떨어져 발에 밟히는 우리나라 인도의 모습과 도비슷했다. 다만 은행 열매가 아니라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오렌지가 바닥에 굴러다닌다는 것이 달랐다. 하나 따서 냄새를 맡아보니 오렌지 향이 가득했다. 도로변에서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주황색 오렌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가 지중해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나중에 아키스에게 물어보니 가로수로 심어 놓은 오렌지 나무의 열매는 먹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생긴 건 같은 데 맛은 없다고 했다. 가게에서 파는 오렌지는 다른 품종이라고 했다. 어쩐지 나무마다 오렌지가 가득한데 따서 가져가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본 바로는 신기해서 하나 따 본 내가 유일했다. 그나저나 안 먹길 잘했다.


사진 11. 아테네 시내의 가로수는 대부분 오렌지 나무다.


지중해는 과일과 채소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이라고 학창 시절에 배웠었는데, 20년 뒤에 내가 그 지중해에 와서 나무에 달린 오렌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계지리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이런 게 인생이구나 싶었다. 후에 재래시장 구경을 가서야 제대로 된 과일과 채소를 볼 수 있었는데,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빛깔과 향기가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우와~ 예쁘다' 하며 동네 바보형 같은 말만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쏘다녔다. 시장에서 산 오렌지는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것이 정말 오렌지가 맞나 싶을 만큼 달고 맛있었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여 오렌지 1kg이 60유로센트(700원)에 불과했다. 오렌지는 내가 알고 있던 오렌지색보다 더 진했고, 토마토는 내가 알고 있던 토마토보다 더 붉었다. 피망은 마치 컴퓨터로 색 보정을 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짙었고 가지의 검은색마저 검게 빛났다.


사진 12. 지중해 국가에 있다는 것을 눈과 코로 확인시켜 주는 재래시장


아테네 시민들의 여유는 그들의 베란다를 보면서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아파트 베란다를 유리로 감싸고 실내 공간으로 이용한다.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하여 거실을 더 넓게 늘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테네의 집들은 대부분 베란다에 차양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베란다를 야외 테라스처럼 꾸며 놓고 살고 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베란다에 앉아 햇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저녁에는 낮은 조명을 켜 두고 예쁜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부부들도 많았다. 


그리스에도 비는 올 테고, 거리에는 자동차 먼지가 일어나 베란다를 청소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모두가 자기만의 예쁜 테라스를 꾸미고 있었다. 아키스의 집 역시 멋진 테라스가 있어서, 내가 시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예쁜 탁자에 앉아 같이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하루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나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베란다나 테라스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저녁이라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진 13. 아테네 시민들은 집집마다 베란다에 차양을 설치해 놓고 테라스에서 저녁 시간을 즐겼다. 


터키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터키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다는 나의 푸념에 그리스는 저렴하니까 걱정 말라고 했었다. 그리스의 경제가 힘들어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물가가 낮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에 도착하니 그렇지 않았다. 일단 유로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최소 단위부터 원화로 환산하면 차이가 많이 났다. 배낭 여행자가 가장 많이 사 먹는 음식은 생수다. 어디를 가든 물을 안 마실 수는 없고, 흔히 물갈이라고 하는 배탈은 정말 괴로운 것이어서 현지 사정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돗물은 피하게 된다. 


터키에서는 1ℓ 생수를 1리라(4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는데 그리스에서는 버스 정거장에 있는 미니 마켓에서 1유로(1300원)에 팔고 있었다. 유로보다 작은 유로센트도 있지만 대부분 유로 단위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저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한국과 비교하면 비싼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내가 얼마나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살고 있었나 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한 시간 최저임금으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햄버거 세트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나라이니 실질 임금 대비 물가는 그리스 보다 한국이 훨씬 높았다.


여행을 하면서 매 끼니를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은 아주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결했었다. 그리스는 특히 외식비가 높았다. 그래서 대형 슈퍼마켓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데 지도를 펼쳐 놓고 아무리 찾아도 대형 슈퍼마켓이 나오지 않았다. 유럽 최대의 유통체인인 까르푸를 찾으니 지도에 몇 군데가 나왔으나 힘들게 찾아가면 그곳에 없었다. 그리스에서 까르푸가 모두 철수한 것인지 찾아가는 곳마다 번번이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힘들게 그리스의 유명한 슈퍼마켓 체인을 알아냈다. 아테네를 포함하여 미코노스 섬이나 크레타 섬에도 있는 'AB MARKET'이 그것이다. 그리스식으로 읽으면 '알파비타 슈퍼마켓'이라 하면 된다. 힘들게 찾고 보니 주위에 많이 있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 아주 간단한 것도 힘들 때가 많다. 아테네에서 대형 슈퍼마켓 찾는 일이 딱 그랬다. 'AB MARKET'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그야말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한국보다도 훨씬 저렴했다. 결국, 식재료의 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한데 식당에 들어가 그들의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면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노동의 가치를 높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서비스를 마음 놓고 받으며 다닐 처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진 14. 그리스를 여행하는 내내 다양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AB MARKET' 


하지만 대형 마트에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던 한국 식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일본 식재료는 종류별로 빼곡하게 있는데 한국 식재료는 하나도 없어서 뭔가 서운했다. 그래서 빵과 치즈와 파스타에 지쳐갈 때쯤 아테네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았다. 여행하면서 일부러 한국 음식을 찾으러 다닌 적은 없었는데, 아테네에 있는 한국 식당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여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 음식이 그립기도 해서 트램을 타고 아테네 외곽에 있다는 식당으로 갔다. 메뉴판에는 구불구불한 그리스어가 아니라 매끈하게 쭉쭉 뻗은 멋진 한글이 가득했다. 


나는 우아하게 김치찌개와 고추장 불고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밑반찬이 하나도 없었다. 밑반찬이 없는 한국 식당이라니. 적어도 김치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봤더니 우리의 밑반찬이 외국에서는 side dish(곁들이는 요리)였다. 김치를 먹고 싶으면 김치를 주문하고, 나물 반찬을 먹고 싶으면 그것을 주문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억울했다. 그래도 한국 식당인데 반찬 인심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고추장 불고기에 쌈채소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 식당에 한국 여행객만 오는 것이 아니라 현지 외국인도 이용을 하니까 그들의 문화에 맞추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리고 한국 식자재는 그리스에서 쉽게 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두부는 직접 만들어서 쓴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 마침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엄청 푸짐한 저녁상을 펼쳐 놓고 식사를 마친 후 갖은 밑반찬과 김치와 상추를 남겨 놓고 밖으로 나갔다. 


식탁을 치우는 종업원에게 저분들이 남긴 야채를 내가 먹으면 안 되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내가 야채를 추가 주문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게 아니라 저들이 남기고 간 것 버리지 말고 내가 먹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제야 알아듣고 웃으면서 상추를 몇 장 갖다 준다. 현지인 종업원은 다른 사람이 먹던 음식을 먹겠다고 하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았다. 슬펐지만 상추쌈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주문한 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 맛있었다. 맛있었던 만큼 큰 지출을 해야 했지만, 입안에 맴도는 매콤한 양념장 냄새와 아삭한 상추의 질감은 오랫동안 나를 흐뭇하게 해주었다.  


사진 15. 이 곳이 외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던 한국 식당 '서울 하우스'


아테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도시 곳곳에 그려진 그라피티(graffitti)였다. 외국 영화를 보면 종종 건물 벽마다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인 그라피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려진 거대한 낙서들을 보니 참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그 수많은 낙서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깨인 유리창 이론처럼 낙서가 있는 곳에는 수많은 낙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고, 깨끗한 곳에는 작은 낙서도 없었다. 거리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위화감이 느껴지는 낙서로 보였다. 그런데 그저 낙서라고 생각한 이 그라피티는 아테네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에도 그려져 있고, 아테네 학당과 아테네 도서관의 벽에도 그려져 있었다. 


일부 국가에서 그라피티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여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아테네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였다면 얼른 새로 페인트칠을 해서 지웠을 것 같은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아키스에게 물어보니 아테네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예술로 생각한다고 했다. 예쁜 건물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보며 나는 낙서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술이란 실로 난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6. 도심 곳곳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그리스를 떠나는 순간까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사실 처음 본 그라피티는 단순히 장난스러운 낙서라기에는 조금 무섭게 느껴졌었다. 아테네 주요 환승역인 오모니아(Omonia)역 뒤편에는 이민자 거리가 있는데 유독 그곳에 있는 호텔들은 현관을 커다란 방범문으로 잠가 놓고 있었다. 그 거리는 시내 중심가와 매우 가까이 있어 아테네를 여행하는 동안 자주 그곳을 지나다닐 수밖에 없는데, 마침 내가 갔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고 경찰차가 와서 누군가를 체포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건물에는 기괴한 그라피티가 많이 그려져 있었다. 그라피티와 커다란 방범문 덕분에 그 거리가 아주 위험하고 무서워 보였다. 


물론 인종 차별 반대, 여성 혐오 반대 같은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그림들은 그들의 처지와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에 빼곡하게 그려진 그라피티는 마치 온몸에 문신을 가득 그려 넣은 무서운 서양 청년을 보는 듯 나를 두렵게 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아테네 여신과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의 거리 곳곳에 가득한 어지러운 그라피티는 그 자리를 잘못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 하나의 매체라면 단순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거나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키스 역시 이민자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히 더 폭력적이거나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거리 역시 내게만 무섭게 보일 뿐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했다.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그것이 참 어려울 때도 많다. 그리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곳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후에는 가능하면 그 골목은 피해서 다녔다.


사진 17.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지나다니기가 꺼려지던 이민자 거리의 모습


하지만 그 거리를 제외하면 내가 걸었던 그리스의 좁은 골목 하나하나는 모두 그들만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바(bar)들이 즐비한 골목,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있는 골목, 유럽의 최신 유행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쇼핑 골목, 작은 의자 두 개만 놓고 장사를 하는 카페들이 있는 골목도 있었다. 그리스 의회 건물 앞에서는 매일 오후 독특한 방식으로 근위병 교대식을 했고, 그 앞으로 펼쳐진 아테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밤바람을 쐬며 여유를 즐겼다. 그들에 섞여 그리스의 명물인 그릭 요거트와 페타 치즈가 가득 들어있는 싸구려 그릭 샐러드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지친 두 다리를 쉬게 했다. 세상 모든 여행자가 꿈꾸는 여행지인 그리스의 아테네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그리스어나 영어를 몰라도,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그저 타박타박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사진 18. 신타그마 광장에 어둠이 내리면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모여 밤을 즐긴다.


사진 19. 파르테논 신전은 낮이나 밤이나, 아테네 어디에 있든 멋진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