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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23 :: 겨우 두 달?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 몰타에서 공부하기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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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일주 23 :: 겨우 두 달?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 몰타에서 공부하기 2

한성은 2016. 10. 11. 19:39
너만의 살아가야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괜찮아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거야 
우린 믿어 의심치 않아

- 이한철, ‘슈퍼스타 노랫말 중에서


형은 영어 공부하는 거예요?”
그냥…. 배우고 싶었어.”

어학원에는 대학생 친구들이 많았다. ‘그냥….’ 이라고 답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랬다. 아무도 나에게 영어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국어 교사마저 영어로 국어를 가르치라는 요구는 아직까지 없었다. 나의 욕심이나 허영심이 나를 몰타로 이끌었다. 하지만 간절함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개월 월급을 한꺼번에 내놓고 학생 신분을 샀다. 후에는 그것이 욕심이든 허영심이든 채워야 했다.

겨우 뿐인데 잘할 있을까? 빨리빨리 영어 실력이 늘었으면 좋겠는데 제자리였다. 오히려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할수록 불안함이 같이 커졌다. 하하 호호 웃는 학생들 사이에서 한마디도 하고 오전 수업을 보낸 선생님을 찾아갔다. 솔직하게 말했다. 속상하고 슬프다고.

< 외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낮에는 어학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뮤지컬 배우를 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구칸(기자의 영어이름), 너는 이제 걸음마(Baby step) 배우고 있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 그리고 역시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걸음마를 배우고 있어. 너도 선생님이니까 알잖아. 걷지 않고 달릴 수는 없어. 걱정 , 후에는 달라져 있을 거야.”

그런지 모르겠지만, ’Baby step’이라는 말이 위로가 됐다. 나도 학생들에게 하던 충고였다. 말이 듣고 싶었던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인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말하고, 위로를 받았던 순간에도 영어 실력이 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는 것은 영어뿐만이 아니었다.

[ 모두 밖으로 나가세요. ]

수업 중에 화재경보기가 울린 날이었다. 화재경보기 소리는 세계 공통인 같았다. 오랜만에 듣는 경보기 소리였다. 학교에 있다 보면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일이 종종 있다. 자주 있는 일이라 교사도, 학생들도 반응하지 않는다. 경보기가 오랫동안 울리면 아무도 끄는 거지?’하고 밖을 내다보는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에서 화재 사건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화재경보기는 잠깐 울리다가 멈췄다. 선생님이 잠깐 나갔다가 오더니 갑자기 밖으로 나가란다. 밖으로 대피했다. 불이 같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왔냐고 물어보니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보기가 울렸는데 울렸는지 몰라서란다. 이유를 때까지 밖으로 대피해 있는 것이었다.

< 화재경보기가 울린 원인을 때까지 학생들은 건물 밖에서 기다렸다. >


정말 놀랐다. 화재 대피 안내 방송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교사가 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다들 이유를 모른다고 했고, 그래서 학생들을 일단 건물 밖으로 대피시킨 것이다. 어학원 측에서 화재경보기 오작동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안내 방송을 기다리며 교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실제 화재일 수도 있고, 오작동일 수도 있다. 그러면 상황에서 화재를 대비해야 할까? 아니면 오작동을 대비해야 할까?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지진이 있다는 의견이 있고, 그럴 일이 없다는 의견이 있다. 안전을 위해서 어느 쪽을 대비해야 할까? 별로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몰타에서 배웠다.

[ 넘치는 예의는 좋지 않아. ]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님 중에 유독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생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산타클로스처럼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스코틀랜드 선생님 (John)’이었다. 그는 굉장히 편협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국어인 영어 배우러 몰려든 외국 학생들을 대체로 얕잡아 봤다. 수위가 낮은 말이 정도였다.

스위스에 문화라는 것이 있어? 시계만 만들어 파는 나라잖아.”
제이미 올리버(영국 유명 요리사) 몰라? 너희 나라는 TV 없어?”
여자는 쓰는 것만 좋아하는 멍청이야.”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있는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발끈하고 대거리를 했다. 처음에는 일부러 학생들을 자극해서 말을 많이 하게 하려고 그러는 알았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속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었다. 어학원 사무실에 가서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수업 시간 내내 그런 것도 아니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었다. 내가 혼자 유별난 건지도 몰랐다.

혼자 한참 고민을 하다가 베젤(Vessal Maani) 선생님께 갔다. 베젤은 내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교사다. 몰타에서 영어 실력을 키우지 못하고 가더라도, 베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있을 정도였다. 그는 프란체스코 같은 유머 감각은 없지만 온화하고 자상했다. 베젤을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학생들은 지나치게 예의가 발라요(Extra Polite). 넘치는 예의는 상대방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지 않아요. 지금은 예의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해요. 구칸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예의를 갖추는 행동이에요.”

베젤은 맥락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상만 보지 않고 문화적 맥락을 함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도 가장 화두가 맥락이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학부 잠시 배웠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듣는 같았다. 어학원에서 겨우 영어를 가르치고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비슷한 말을 했더니 예순을 바라보는 선생님이 웃으며 나에게 열정을 선물해 주었다.

여기서 나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 학생을 만나면서 내가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내년에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그는 나를 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마 오랫동안 그를 잊을 없을 같다.

< 몰타에서 만난 이상형 베젤 선생님 >


[ 같이 공부하면 괜찮아. ]

어학원에는 한국에서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교가 여름 방학을 시작하는 성수기로 접어들수록 학생들은 많아졌다. 물론 전체 학생 비율로 따져보면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몰타에는 가까운 유럽이나 터키에서 오는 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 한국 학생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 나는 성격 탓인지 그러지 못했다. 대부분 제자들과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었다. 멀리 타향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사이인데 굳이 모른 척할 필요는 없을 같다.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과 함께 다니며 한국어만 사용한다면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잔소리를 해야 했다. 그게 나였다.

“Speaking English! Only English!”

한국 학생들과 있으면서 좋은 점도 있었는데, 함께 이야기하면서 서로 피드백을 주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는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그때그때 피드백을 받기가 힘들었다. 선생님도 대화를 중단하고 틀린 표현을 바로 잡기보다는 학생들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지도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한국 친구들이 필요했다.

모든 학생이 그렇듯 만나면 언제나 수업 이야기, 영어 이야기였다. 상대가 누구든 나보다 영어를 잘하면 사람이 나의 선생님이 됐다.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 없었다. 개인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만들어진 문장을 영어로 내뱉는 것이었다. ‘그냥 잠깐 나갔다 올게.’ 이걸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한국어의 어감을 모르니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소득이 없었다. 이럴 때는 한국 친구들이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 우리만의 수요미식회 ]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한다고 모두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 아니다. 몰타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지낼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간단히 먹는다고 해도 외식을 하려면 10~15유로는 있어야 했다. 두번이야 그럴 있지만, 개월을 지내면서 식당에 앉아 배부르게 먹을 수는 없었다. 주문할 때마다 숫자가 더해지는 계산서를 보고 있으면 소화도 됐다

고기 실컷 먹어보자.”

친구들을 모았다. 몰타는 어디에나 멋진 해변이 있다. 어디서든 5분만 걸으면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있었다. 특히 슬리에마 근처는 모래 해변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가 평평하게 깔린 해변이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바비큐 용품과 고기를 샀다. 휴대용 버너를 사고 커다란 냄비도 샀다. 유럽 어디나 그렇듯 슈퍼마켓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했다. 돼지고기가 1kg 5유로(6,500) 정도였다.

< 어학원 바로 앞에 있던 슬리에마 비치. 몰타는 어디나 멋진 해변이 있다.  >

< 고기 한번 실컷 먹어보자며 벌어진 바비큐 파티 >


슬리에마 해변에 모여 앉아서 파티를 시작했다. 숯에 불이 완전히 오를 때까지 바닷속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두껍게 썰어 놓은 목살이 빨간 숯불 위에서 익어갔다. 쌀밥도 하고 라면도 끓였다. 함께 둘러앉아서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밥과 고기를 먹었다. 아직 라면이 남아 있었다.

먹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위가 움직이면서 공간을 만들 거야.”

영재고를 졸업하고 과학기술원에서 공부하는 친구의 말이었다. 말도 된다며 더는 먹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순간에 우리의 위가 움직였던 같다. 끓여 놓은 라면은 국물 방울 남기지 않고 모두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늦도록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쌓여 있는 이야기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처럼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물고 태어나 바람이나 어학연수를 사람은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는 편하게 이십 대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박함과 불안함은 나보다 훨씬 컸다. 그저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자리에 모인 누구도 서로의 짐을 덜어 없었지만,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모두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여행하면서 배가 고프면 서러웠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그날부터 일주일에 번씩은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침 수요일이라 우리끼리 수요미식회라며 예능 프로그램 이름을 붙였다. 기숙사 식당에 모여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다. 마치 훈련병들이 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써내듯 메뉴판이 만들어졌다.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 실력이 빛을 발했다.

춘장을 사다가 기름에 볶아 자장면을 만들고, 고추기름을 내어 짬뽕을 끓였다. 삼겹살 김치찜은 인기 메뉴였다. 복날에는 닭백숙을 만들어 같이 나눠 먹었다. 음식을 때마다 외국인 친구들도 모였다. 주방에서는 언제나 세계 음식 박람회가 열렸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경험할 없었던 일들이었다. 언제나 좋은 수업은 교실 밖에 있었다.

< 몰타는 매일 삼복더위였지만, 복날은 챙겼다. >


[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 너는 몰라. ]

8주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학연수 기간에 틈틈이 몰타 곳곳을 여행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시칠리아 섬에도 다녀왔다. 하지만 중요한 영어 실력이 그대로였다. 마지막 주에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마음은 급한데 욕심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서 답답했다.

그때 우연히 스위스에서 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같이 이야기해 적은 있지만, 나보다 상급반이라서 친해지지는 못했던 친구였다. 친구가 수업 시간에 만에 정말 빨리 영어 실력이 늘었던 친구가 있다.’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변한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 시간에 베젤 선생님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구칸, 네가 얼마나 변했는지 너는 모를 거예요.”

시칠리아 여행을 하던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 더위를 피해 그리스 원형극장의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백인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무어라 이야기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들었다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냥 지나가버렸다. 내가 아니라 뒤에 있던 일행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쓱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야기를 했어도 제대로 대화가 이어졌을지 나도 모른다. 다만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외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외국인 할아버지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동안 교재 권을 마치지도 못했고 자격증을 것도 아니지만, 정도면 나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메고 여행을 시작하면 놀러 오라며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생겼다. 여행을 잠시 멈추고 학생으로 돌아갔던 지난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아니, 성장했다. 뿌듯했다.

< 동안 많이 친해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스위스, 카자흐스탄, 러시아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