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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아홉걸음
수많은 바람이 불어오고 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시간은 아무런 말 없이 지금도 쏜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다음 달에 여행 가자고 - 3호선 버터플라이, '스물아홉, 문득'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 '스물아홉, 문득'을 들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호기롭던 대학생 시절 술에 잔뜩 취한 채 남상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스물아홉이 되면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스물아홉이 되면 나에게 해외여행 정도는 가볍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삶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스물아홉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던 해..
좋은 아침이야 참 좋은 아침이야 늦잠을 자고 뒹굴거리기 참 좋은 아침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날 거라는 순진한 발상으로 알람도 없이 애인의 모닝콜도 없이 서른 살으로 인생의 햇살이 정수리에서 내리쬐는 이 순간 좋아 속도 없이 웃을 수 있는 내가 좋은 아침이야 참 좋은 아침이야 늦잠을 자고 뒹굴거리기 참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슬슬 일어나볼까 점심을 먹자 이런 날엔 뭐든 다 좋아 - 가을방학,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노랫말 중에서 어제저녁 해가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해가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올랐다. 지금까지 12747번을 경험했던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아..
아무리 너 잘났다 나 잘났다 그래도 내 자신을 잃는다면 의미 없지 내가 걸어가는 길은 나의 길 누군가 예쁘게 만든 길보다는 눈부신 길이지 땅밑에서 올려다 본 이 세상 걸어선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빌딩의 세상 나는 그저 바보처럼 살아가리라 외로운 한 줄기 연기가 되어 Like a fool just laugh at this world sing a song just like a fool Like a fool just laugh at this world sing a song just like a fool - 레이지본, ‘바보’ 노랫말 중에서 베를린 중앙역에서 출발해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한참을 헤매다가 베를린 외곽에 있는 DRM 캠핑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내..
예~ 소방관 아저씨 내 머릿속에 타는 이 불 좀 꺼주세요 예~ 소방관 아저씨 착한 나는 뒤집어진 이 세상이 힘들어 뻥하고 터지는 저 거품 같은 이름들 권위는 국 끓여도 국물도 안 우러나와 미친개도 피해 가는 미친 분도 뻔지르르 사람은 겉만 봐선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물론이지 - 스푸키 바나나, '소방관 아저씨' 노랫말 중에서 한국에서 연일 촛불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이곳 프랑스에서도 접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방송을 보며 '이런 상황에서 팔자 좋게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맞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머릿속이 타는 것 같다. 이렇게 타는 머릿속을 헤집고 북유럽의 청명했던 하늘을 떠올려야 한다니. 좋은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 캠핑카를 타고 북유럽을 여행하는 것은 우주여행..
나의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앉아있다 일어설 때면 언제나 에구구구구구구구구 소리를 내지요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어요 에구구구 I love that sound 에구구구 I like that sound 에구구구 Wanna hear that sound 에구구구 Oh my god i love you - 요조, '에구구구' 노랫말 중에서 전날 무리한 탓인지 어깨, 허리, 다리가 무겁고 아팠다. 어림잡아 27km 정도 걸었던 것 같다. 한라산 백록담 코스 중 가장 길다는 성판악을 다녀왔을 때가 4만 걸음이었다. 어제 하루 백록담을 올라갔다 내려온 것이다. 런던은 언덕 하나 없는 평지여서 걸을 때는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에구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이렇게 두 발로 걸어 다닌..
만약에 당신이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묻는다면 난 아마도 머리카락에 껌이 붙어 있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야 저 기차가 떠나면 우리의 기억도 함께 싣고 가버릴 것만 같아 뚜빠뚜빠띠 내게서 멀어진 뚜빠뚜빠띠 찾으려 해 힘들겠지만 뚜빠뚜빠띠 만날수 있겠지 뚜빠뚜빠띠 언젠가는 - 델리스파이스, '뚜빠뚜빠띠' 노랫말 중에서 저렴하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자. 힘들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사용하는 영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물가가 높았다. 유럽에서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그랬다. 스위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데, 여행자들이 흔한 말로 ..
서울살이는 조금은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앞에 앉은 사람 쳐다보다가도 저 사람의 오늘의 땀 내 것보다도 짠맛일지 몰라 광화문 계단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면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떠다니고 있네 이 작은 도시에 - 오지은, ‘서울살이는’ 노랫말 중에서 런던살이는 어떨까? 런던은 높은 물가와 살인적인 집값으로 유명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도시도 손꼽히기도 한다. 또,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난 5월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인 사디크 칸(Sadiq Aman Khan)을 런던 시장으로 선출하는 역량을 보여준 도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브렉시트(Brexit)의 광풍 속에..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짓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봐 근심스런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 전람회, ‘졸업’ 노랫말 중에서 몰타를 떠나 영국 런던으로 가는 날이다. 숙소에서 마지막 체크아웃을 하고 어학원으로 향했다. 겨우 두 달 지낸 곳이지만, 노란 집들과 색색의 몰타 발코니들이 눈에 밟힌다. 어학원 수업도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정들었던 베젤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가족처럼 지냈던 한국 친구들이 배웅을 해줬다. 여행은 언제나 헤어짐과 만남의 연속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지 않으면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없다. 마음 한쪽에서 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두 달을 지냈다. 내 주소가 생겨서 인터넷 쇼핑도 하고, 한국에서 소포도 받았다. 몰타에서는 정말 현지인처럼 지냈다. 무시무시한 몰타의 햇볕 때문에 생활뿐만 아니라 외모도 현지인처럼 되었다. 어학원에서 처음 만난 한국 학생들 누구도 나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햇볕이 내리쬐는 큰길을 피해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어진 지름길을 찾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음 목적지는 독일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북유럽 캠핑카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저렴한 독일에서 캠핑카를 빌리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독일로 가기 전에 영국을 경유해야 했다. 이유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 이상은, ‘언젠가는’ 노랫말 중에서 얼티밋 워리어, 헐크 호건, 홍키동키맨, 밀리언 달러맨..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들의 경기 장면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 WWF 경기 테이프를 빌려다가 친구들과 모여서 참 열심히도 봤었다. ‘진짜다, 아니다’를 두고 심각한 언쟁을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프로 레슬링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WWF는 슬램덩크와 월드컵에 밀려 나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WWF 섬머슬램 88’을 오래된 놀이공원에 방치된 녹슨 범퍼카처럼 기억하고 있는 내가 몰타에서 프..